기 20대 후반부터 해서 30대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쓰는 글
부모님 나이대는 대략 50대~60대 정도가 많을듯 한데
이들이 사회생활을 본격 시작한 시기는 1980-90년대쯤
그리고 한창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자리잡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하던 1990년대 후반에 찾아온 것
IMF 외환위기
경제적으로 진짜 힘들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일자리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부모님들은 작은 아르바이트라도 해가면서 가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했음
맞벌이도 당연히 더 늘었고
풀타임 근무가 아니더라도 어머님들이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늘었음
그땐 주6일제가 당연했음 그냥 당연했음
야근도 많았고 그냥 많았음
대충 우리나라가 주5일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건
2001년 무렵이고 2004-5년경부터 시범적으로 운영 확산 됨.
실제적으로 사기업에 자리잡은건 훨씬 이 이후임.
주5한다고 뭐 저런 소리를 하던 시절도 있었음
지금보다 훨씬 더 직장내 문화가 강압적이었던 시절이었고
우리부모님들도 분명 가슴에 이걸 품고 다녔음
그런데 참아내심....
그리고 1980년대 초중반생들의 경우
도시락, 급식을 같이 경험한 세대이기도 한데
엄마는 매일매일 도시락을 쌌음
그것도 아침하고 똑같은 반찬 넣어놓으면 자식들이 반찬투정하기가 일상...
어머니들의 도시락 고민은 매일매일이었음
지금처럼 사먹는 메뉴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시켜먹는 것도 밀키트도 없던 시절...
도대체 우리 부모님들은
주 6일에 야근야근야근 하던 삶에서
어떻게 우리를 낳아서 키우고 항상 따뜻한 밥을 해먹이며
주말이면 가끔 우리와 나들이도 가고 했는지
사회생활을 할수록 할수록 더 의문임
부모님들 리스펙.........
제가 부모가 되어보니.. 더더욱.. 인정..됩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보니.. 더더욱.. 인정..됩니다.
정말 후달리던 세상에서 살아남았음에 아직도 감사하게 삽니다
존경합니다.
"놀토"라는 단어도 초중고 학교에서 격주로 토요일 등교을 안하게 되면서 생겼던 기억이 납니다.
참치캔 아니고 장조림캔 있으면 부러움받았음 ㅎㅎㅎ
육군은 너무 늦고 , 당시 해/공군이 지원하면 2달안에 영장 나와서 난 해군갔음.
보통 700명 수준으로 받는데 , 우린 IMF 기수라 하여 천명이 넘게 받았음.
내무실에서 동기들 말 들어보면 정말 다양한 사연들이 많아서..서로를 위로 해주느라 끈끈했음.
아버지 명퇴.사업부도.이혼.자살등 사연이 없는 애들이 없었음....
우리 어릴적 할아버지 할머니들 5~60대 였을때 자식들이 이야기 하면
-그래 내가 뭘 알겠노 니들이 알아서 해라
그 자식들이 성장한게 지금의 5~60대 인데 똑같이 자식들이나 주변에서 이야기 하면
-야 니가 뭘 안다고 그라노?
이게 지금의 5~60대 입니다
50대는 아니었고, 자신이 속한 60대 이야기였음.
70년대 후반 학번에서 80년대 초반 학번들이 60대가 되고 나서 보이는 정치적인 태도에 대한 언급이었음.
녹두대로 유명한 학교출신이라 시위도 많이 했고
군시절에 김일성이 죽어서, 전쟁나는 줄 알았고
복학해서, 졸업직후에 IMF터짐.
뭔 이런... ㅋㅋㅋ
하지만, 잘 버티고 잘 이겨내서 수십년 근무하고,
퇴사 후 자영업하는 중 ㅋ
60년대 출생들과 70년대 출생들 빠이팅~~~
89년 서광주 톨게이트에서 전경들과 1박2일간 대치했던 적이 있었는데,
한밤에 오월대 녹두대 10여명이 저수지를 헤엄쳐 건너 와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조금 늦게 입대해서 95,6,7년도 광주에서 전경으로 근무했었는데... 전역하고 4학년 복학하고, 졸업하고 바로 IMF터져서 개고생 좀 했죠. 뭐 지금은 추억이지만요.
싸셨음. 어머니 사랑합니다.
야근에 토요일 심지어 일요일..
회사 끝나면 공장 슈퍼에서 찌게 하나시캬놓고
소주 먹은게 ...
내가 다닌 학교는 무료 기숙사에 국립이라 등록금 싸서, 절대 이 학교에 오면 안되는 동기들이 많이 왔었음. 전국 10% 정도 학교인데, 상위 2~3%들도 제법 있었음. 왜냐하면, 3% 이내면, 4년 장학생이었기 때문임.
토요일도 학교 갔음
토요일 학교 갔다 와서 실내화 빨아 널어야 함. 월요일까지 말리려면...
실내화 안 신고 가면 선생한테 쳐맞음
한반에 60명씩 됨
난로에 넣을 조개탄 학생들 시켜서 나름
학급 청소, 교무실 청소, 운동장 청소 다 학생들 시킴
바닥에 왁스칠 학생들한테 시킴
학교 폭력 아동학대 왕따? 그딴거 없음 어른은 애들 패도 되고 애들끼리 싸운 거라며 다 그냥 넘어감
학교 선생들 촌지 받음 이유없이 선생이 분풀이로 애들 패면 그 부분 의심해볼 만함
월요일마다 애국조회함
교장 선생 쓸데없는 얘기만 40분함
여름에 조회하다 애들 쓰러지면 정신력 부족하다고 갈굼
금연 구역 없음
선생이 애들 앞에서 담배핌
관강버스 담배 마음대로 피라고 의자에 재떨이 달려 있음
택시 타면 기사가 담배 핌
임산부 노약자 그딴거 없음
CCTV 블랙박스 없어서 범죄자들 멀쩡히 사회 활보하고 다님
전두환 새끼 독재하니
광주 시민들 학살하고 아무나 삼청교육대 쳐넣고 고문해서 사람 죽이고
거의 매일 최루탄 냄새 맡고 삼
학력차별은 엄청 심한데 대학 가기는 드럽게 힘듬
수시 전형 같은 거 없고 전기 후기 꼴랑 두번뿐이 지원 기회 없음
애들 성적 때문에 막 자살함
오죽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같은 영화들 나옴
4당5락이라고 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이라는 말 유행함
애들 잠 안자려고 각성제 먹음
과외 금지였는데 돈 있는 집 자식들 불법으로 과외함
어렵게 대학가니 IMF 터짐
군대 폭력 난무함
툭하면 의문사 생기고 탈영사건 생기고 난사 사건 생김
복무기간 2년 넘음
월급 8000원임, 시급 아니고 월급임
와 적다보니 이게 나라냐?
방에서도 담배 피우고 - 아기공룡 둘리 - 램프의 노인편에서 고길동이 방안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옴.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 피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재떨이 버리고 와라 하면 재떨이는 버리면 안됨 ㅋㅋㅋ
지금도 연식 있는 비행기 타면 흡연금지등이 있음, 그거슨 흡연금지등에 불이 안들어오면 흡연 가능인 것임.
힘든게 아닌 당연시로.
그래도 쫌만 애쓰면 원하는 기업이라도.
지금 시대 청춘을 응원합니다.
2ㆍ30대들은 결혼도 신중하고
애를 잘 안 낳죠~
현금자산과 부동산이 어느정도
확보된 계층이 아니면
여테 일요일만 쉬다가 5일제 하니 좋았는데 이젠 4일제 하고싶다!
아침에 꾸물대는 9살배기에게 서두르라고 한 소리 했더니 출근하고 마음이 자꾸 쓰이네요.
저도 IMF 맞아서 많은 대기업들이 "골"로 가고 금융기관 합병하고 "명예퇴직"하고 "쫒겨나고"하는 시절을 겪었고 은행 당좌대출 이자율이 30%를 넘었던 시절도 있었죠.....
부동산은 똥값이 됐는데 당시 부동산을 절반값에 매입이 가능했는데 저는 돈이 없어서......
그리고, 주5일 근무 시작은 제가 근무하는 회사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주5일 근무 제일 먼저 시작한 회사(업종)은 어디일까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혼자 벌면서 부모님과 아이들이 있었으니 부득이한 선택이었지요.
91년에 전 고1 이었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새벽 도시락 싸시는 어미니께 죄송합니다.
그래서 도시락 반찬 싸지 말고 맨밥과 밥 모퉁이에 자그마하게 양념 고추장 랩에 쌓아 넣어달라 했습니다.
그리고 등교 할 때 학교 앞 가게에서 참치캔 하나를 사갔습니다.
당시 야채참치 통조림이 나왔을 때입니다. 고2였나, 3였나... 그때 고추참치 통조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3년간 아이들과 서로 반찬을 쉐어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참치맨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해결했습니다.
대입시험을 봅니다. 수능이랍니다. 이전까지 학력고사였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명문대의 정원미달과 중상위권의 엄청난 경쟁률이 생겼습니다.
군생활 마칠 때 IMF가 터졌습니다.
복학하려면 1학기 등록금 내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알바자리가 없습니다. 노가다도 없습니다.
부모님께 손 못벌립니다.
여자동기들은 확정됐던 취업 다 취소되고, 출근했는데 회사가 사라졌다는 애들도 있습니다.
어찌저찌 곧 졸업이라 취직 알아보려는데 닷컴 버블로 일자리가 굉장히 줄었습니다.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곧 새해가 밝는데 정말 다행히 중견기업 취직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몇개월 뒤... 카드대란이 벌어졌습니다.
경제가 휘청입니다. 매일마다 신불자가 수만명씩 생긴다는 뉴스로 도배됩니다.
경제가 그러니 회사 경기가 안좋아 회사에서는 칼춤이 난무합니다.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정말 죽어라 일했습니다. 그렇게 몇년...
그사이 만나는 여자도 생겼습니다.
이제 주 5일 근무도 합니다.
30이 넘고 결혼이란 걸 생각 할 나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2007년 말에 결혼했습니다.
부동산이 너무 올라 언감생심 아파트 전세는 꿈도 못꾸고 빌라는 전세가격이나 매매가격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대출 받아 작은 빌라 하나 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리먼사태가 터집니다.
이자는 올라가고 또 다시 회사는 어렵고...
예전 칼바람이 다시 휩씁니다.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정말 더 죽어라 일했습니다.
몇년 후 재계 서열 대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그런데 40대가 되고나니 툭 하면 40대 이상 희망퇴직 안내 공지가 뜹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국가 모든 인프라시설은 세금으로 만들어짐. 즉 전철도 도로도 신호등 모든 것들이 세금으로 만들어짐.
그럼 누구 돈이냐? 사회생활 첨 하는 사람 보다 평생 50년 세금 내고 퇴직 한 노인들 돈으로 만들어 진거임.
그걸 왜 지들이 무임승차 하지 말라고 그러나? 무임승차는 지들이 하고 있으면서
그리고 지들도 유아.초딩.종고딩때 이미 무료. 할인 받았음 . 요금을 누가 대신 내줬냐? 그당시 일을한 노인들이 내준거임.
진짜 생각이 짦음.
제가 외국인 하고 살아보니 그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패전했던 나라였지만 다른나라의 속국이 되지 않았던 그리고 많이낳고 많이 키워서 자녀들에게 나중에 보상도 받고 집안도 일으키던 그시절. 뭐든지 빨라해야 하고 많이 일해야 했던 시절 뉴스에서는 나라가 힘든게 항상 국민이 돈많이 쓰고 일을 덜해서 그렇다고 떳떳하게 뉴스가 나오던 시절. 그어렵던 시절. 저도 결핵도 걸려보고 영양실조에 부모님의 안좋은환경에 중학교때 자퇴도 했다가 어렵사리 복학도 해보고 그땐 내인생이 왜이럴까만 생각했는데 제가 부모가 되어보니 저를 안버리고 데리고 살아주신것에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제주변에는 일부 방황하다가 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친구들이 많습니다. 시간은 이제 저에게 바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나이드신 어머니와 아직 해보고 싶은것도 많고. 돌봐드려야 할 부분도 많고저의 아기 . 저의 배우자 이젠 새아파트에 그래도 그냥저냥 남들타는 차정도는 타는데도돈앞에서 항상 걱정이 앞서고 그달벌어서 그달 살기도 버겁습니다.
어릴적처럼 근검절약하고 악착같이 살면 되지 않겠냐 하지만 제 가족이 먹는거 노는거 까지 줄여가며 살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회구조상 그럴때마다 내가 길가다가 바나나우유 사달라고 하고 길거리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을때 어머니도 얼마나 드시고 싶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 산업시장 전반에 인력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2차산업 위주로 성장한 한국은 더할나위 없습니다. 장인정신도 없고 전통도 없던 나라에 갑자기 노동인력 절벽까지 와버렸습니다. 취업은 60대가 제일 활발하다고 합니다. 자식들 다퍼주고 이제 본인 앞가림 하기도 버거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농촌이나 공장.중소기업들은 이제 외국인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구절벽이 코앞에까지 왔습니다. 저도 주5일 좋아하고 쉬는날엔 가족들과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급격히 고도성장한 한국의 밑바탕은 아직 중소기업들이나 자영업은 일을 많이 해야만 살수 있는 구조이죠.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인생을 맡기고 안정적이게 살기 원하지만 이또한 경쟁도 심하고 40중반이면 퇴직걱정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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