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전우용교수님의 죽세가공시 시원한 정리를 공유합니다.
전우용교수님 오늘 페이스북.
‘부적절한 관계’. 1995년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성적 접촉이 있었음을 시인하며 쓴 말로, 이제는 ‘불륜’을 뜻하는 관용어가 됐습니다. 이 일로 클린턴은 국제 망신을 당했지만, 미국 민주주의는 오히려 ‘정상 작동의 증거’를 얻었습니다. 후진 독재국가였다면 대통령은 끝까지 부인했을 것이고 르윈스키는 ‘입틀막’을 당했을 것이며, 이 폭로를 보도한 언론사는 ‘중징계’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에 참석해서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바이든은 “나는 의회의 동료들과 협력해 글로벌펀드에 60억 달러를 더 기부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연설을 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외교부장관에게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해주면 ×××는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전후 문맥상, 그리고 발음상 ×××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바이든’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대통령실 대변인은 “다시 한 번 잘 들어봐 주십시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입니다.”라고 황당한 주장을 폈습니다. 그러자 언론들과 윤석열 지지자들은 ‘날리면’이 맞다고 우기기 시작했고, MBC는 결국 ‘중징계’를 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발언 당사자에게 서면 증언조차 요구하지 않고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알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전형적인 후진 독재국가식 사태 전개였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을 ‘정상인’으로 꾸미기 위해서 상식적이고 오감(五感)이 살아있는 국민을 바보, 머저리, 등신 취급하는 이 정권의 후진 독재적 행태는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국가 부재’로 목숨을 잃은 이태원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더러 ‘거기 놀러간 사람이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자들, 핵 폐기물에 오염된 바닷물이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자들, 홍범도 장군은 빨갱이지만 백선엽은 위인이고 이승만은 국부라고 주장하는 자들....최근에는 ‘875원은 대파 한 뿌리 값’이라고 주장하는 자도 나왔습니다.
이 정권은 대통령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인정하거나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가 들어왔다’고 해명하면 되었을 일들, 정 해명하기 어려우면 ‘노 코멘트’라고 해도 되었을 일들에 ‘상식인’을 바보 취급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윤석열 정권 지지자들은 그때마다 ‘몰상식’을 ‘상식’이라 우기고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식이 상식의 지위를 차지하고 무능이 유능으로 포장되는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합니다.
말의 전후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이 시키는대로만 믿고 말하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지능과 오감(五感) 없이 움직이는 존재는 그저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이 나라에 자기 지능과 자기 청각까지 배신하는 꼭두각시가 너무 많다는 건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꼭두각시와 싸워 지지 않으리라는 건 희망적인 기대입니다. 이번 선거는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수치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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