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박정희 16년간의 집권동안 한국의 경제발전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무슨일인지 박정희 시대에 우리나라의 경제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많은 노인들이 박정희가 먹여살렸다라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최빈국 신세라고 말을 자주한다. 왜 그럴까?
이것은 정부주도의 세뇌작업과 언론의 치밀한 공조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가장 큰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면서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것은 무려 3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이다. 당시로서 우리나라 국민총생산 GDP의 50%에 달하는 원조를 매년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많은 어용언론인들은 다른 나라들도 미국이 많은 원조를 했지만 거의 모든 국가가 원조로 받은 돈만 날리고 경제개발에 실패하고 말핬지만 한국은 성공할 수 있었고 그것은 바로 박정희의 통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당시 미국이 한국에 퍼부은 원조는 같은 생활수준이던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전체에 보내준 원조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즉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대륙급 지원이었던 것이다. 이런 막강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6.25직후 최소한 먹을 것이 없는 시절은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지금이 60~80대에 해당하는 1940~1960생의 노인들은 직접구호 물품으로 부터 미국산 분유와 미국인들이 입던 옷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미국산 밀은 라면이나 빵등 우리나라의 곡식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을때 직접적인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언론은 그런 사실을 교모하게 지워버린다. 국가적 자존심이 그 배경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박정희의 치적으로 돌리는데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노인들의 기억속에는 미국옷과 분유와 미국산 밀가루와 직접적으로 미국에서 받았고 그것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었음에도 박정희가 경제를 발전시켜서 삶이 개선되었다라고 하는 앞뒤가 안맞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된다.
6.25직후 남북한 모두 폐허가 됬상횡에서 미국은 남한에 어머어마한 원조를 퍼부어서 남한이 북한을 국력으로 압도하기를 바랬지만 박정희독재정권 하에서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특정세력들이 집중적으로 원조를 가로챘는데 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밀가루는 특정인력이 독점하고 헌옷하고 분유같은것만 국민들이게 돌아갔다. 이것은 미국으로써는 매우 곤혹 스러운 일이었고 지금도 부정부패한 저개발 국가에서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고 당시 6.25전쟁 특수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경제성장에 일조를 하도록 만든다.
아니 그래도 박정희때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만들었어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16년간의 박정희 집권기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자.
남북한의 1인당 소득 비교.
남한의 1인당 소득이 북한을 넘어서게 된것은 박정희 정권 집권 10년 차인 1973년이다. 이것도 우리나라 경제의 극적인 성장보다는 1974년 이후 북한의 경제성장율이 후퇴하면서 발생한 차이이다. 즉 그 많은 돈을 미국이 쏟아붇고 국방까지 버티고 있었는데 북한을 앞서는데 10년이나 걸린 셈이다. 소련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거의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박정희 정권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킨 영웅이라면 김일성은 북한 경제를 발전시킨 수퍼영웅이 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만의 상황을 보자.
우리나라가 대만의 1인당 소득은 2005년에 가서야 겨우 앞지르게 된다. 대만은 한국과 같이 내전을 치루어서 국토가 황폐화 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동중국해의 섬으로써 국민당이 대만으로 도망쳐왔을때 일본이 버리고간 설비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만에는 박정희가 없었다. 박정희가 그토록 우리나라 경제개발을 이룬사람으로 칭송을 받는다면 대만의 경우 장제스와 장징궈 같은 경우 경재개발의 신으로 받들어 모셔야 할 정도이다. 데이터 상으로 적어도 박정희보다는 훨씬 경제발전을 이룬 인물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장기집권과 부역언론에의한 국민적 세뇌의 산물이다. 또한 우리나라 정서의 특성상 죽은 사람에 대한 냉정한 판단은 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건너 띄고 그 세뇌가 남아 있도록 놔두었다. 많은 국제적인 평가 중에 조차 좋은것만 따와서 확대하고 반복하여 국민들이게 이미지를 심어놓는다. 그가 다떨어진 런닝셔츠를 입고 국수로 점심을 먹었다고 나라를 생각하는 검소한 아버지같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풀리고 여자연예인들 불러다가 안가에서 씨바스 리갈을 까던 오입쟁이 이미지는 덮는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런 환상을 즉, 세뇌의 잔재를 끊임없이 되살린다. 단적인 예가 선거철만 되면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대구에 내려가서 대구사람들에게 보수의 텃밭이네 보수의 영원이네 하는 것 부터가 그렇다. 그리고 죽었기 때문에 평가가 유보된 박정희를 끊임없이 소환시켜서 영웅화된 이미지를 부활시킨다.
박정희가 죽은지 40년이 지났고 그가 남긴 잔재들도 이게 거의 사라져간다. 공주로 추앙받던 박근혜조차 거의 힘을 잃었다. 이제는 박정희를 냉정하게 봐도 될때가 된것이다. 더이상 노인들에게 세뇌시킨 그 이미지를 젊은이들이 고스란히 물려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제는 너무나도 오래된 과거이고 죽은 박정희가 아직도 우리나라의 발전에 발목을 거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가발전은 의외로 민간 주도로 이루어졌음. 이건희 말대로 정치는 최근까지 삼류를 못벗어나고 있음.
자고로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경제정책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임 바다위에 떠있는 조각배같이 외부의 풍파에 많이 좌우되는 상황임. 경제정책이 없다고 보는 이유는 우리나라 금융관료들이 경제정책을 세워서 진행하는 것보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공무원의 특성상 안전빵으로 경제정책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임.
아무튼 좌파의 특징중 하나야. 통계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고치고 추려다가 선동하는거.
박정희만한 인물이 오천년 한반도 역사에 있으면 찿아봐라.
한반도의 역사에서 민중의 삶은 배고픔과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이를 근대화를 통해 해결한 유일한 사람이야.
좌파들 ㅈㄴ웃긴게 미의회 인권위에서 문재인깔때는 미국이 세계의 악의축인듯이 까더니만
(미국에서 박정희 높게평가하는것까지가져와서깠었죠)
미국의 사이좋아지니까 갑자기 미국이랑사이좋다고 국뽕차오르는거 역겹습니다.
박정희 독재자 다음 쥐박이가 나라에 도움이 된 건 팩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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