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가서 지인 잘 둬서 포르쉐 마칸 GTS를 몰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김. 세상 복이 여러가지지만 인복도 참 큰 복인듯.
대한민국 가격으로는 대략 1억 2000만원 시작인데, 보통 깡통으로 출고하는 경우는 없고, 1000만원 이상 옵션 넣는 경우가 많음. (뭐 하나 추가해도 200만원씩 뛰니 그럴 수 밖에.)
대신 북미 포르쉐 가격은 대한민국보다 저렴함.
포르쉐 마칸 GTS. 한국에서는 최상위 트림이지만, 북미에서는 중상위 트림.
다른 제조사도 마찬가지지만, 트림이 올라갈수록 가격이 비싸지는데, 포르쉐는 가격 폭이 훨씬 크다.
포르쉐를 타면 애지중지할 것 같지만, 사람마다 다름. 어떤 사람은 경차를 타도 깔끔하게 주기적으로 세차하는데, 어떤 사람은 비싼 차 사도 대충 관리함.
내 지인은 포르쉐인데 약간 긁혀도 상관 안 하고, 세차도 잘 안 함. 그냥 차라고 생각하며 탐. 새 똥 굳으면 잘 안 닦이는데, 그냥 타고 다닌다고.
예전에 포르쉐 카이엔은 타봤다지만, 마칸은 처음. 승차감은 카이엔과 차이가 많이 남.
마칸은 현대 투산 크기로(지금 세대 투산보다 더 작음), 지면의 도돌거리는 게 느껴져서 안락한 승차감은 아니고, 스포츠카지만 일반 SUV 정도의 편안함은 있다는 느낌. 아주 단단하지 않음. 그러니까 싼 차는 달그닥 덜컹 거린다면, 이 차는 그런 노면 요철을 대강 문질러서 도돌거리게 만들어주는 느낌.
카이엔은 묵직하게 전차처럼 깔고 가는 느낌인데, 옛날 볼보 차보다 더 무겁게 깔리는 느낌. 카이엔 승차감이 훨씬 고급짐.
어쨌든 포르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게, 일반 모드에서의 승차감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SUV 느낌 그대로임. 내가 스포츠카를 탔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고, 그냥 평범한 차 타는 느낌.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갔는데, 고급 세단에서의 에어 서스펜션 느낌이 안 남. 그냥 고속 주행을 위해 전고를 낮추는 것과 일반 방지턱을 넘을 때의 전고를 높여주는 정도의 차이인 듯.
실제로 일반 모드에서는 에어 서스펜션의 높낮이 차이로는 승차감 차이가 전혀 없음.
그런데 포르쉐의 장점이 스포츠 모드일 때는 완전 바뀌어버림. 자아가 2개. 일단 DCT 7단 미션인데, 울컥이는 것은 전혀 없고 반응이 ZF마냥 엄청 빠름. 연비를 위한 차가 아니다보니, 7단이어도 고속 영역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함.
사실 포르쉐는 살살 몰아도 엔진 세팅 때문인지 연비가 아주 잘 나오지는 않음. (그래도 레인지 로버보다는 훨씬 낫고, 기름값이 부담될 정도는 아님. 일반 차보다 살짝 덜 나오는 정도.)
앞서 말한 에어 서스펜션도 스포츠 모드에서는 승차감이 단단하게 바뀜. 변화의 폭이 극적으로 크진 않으나, 조수석에서 느낄 만큼 커짐.
엔진은 V6인데, 출력이 시원시원함. 런치 컨트롤하면 과장하지 않고 고개가 뒤로 쏠릴 정도. 그런데 기술이 좋아서인지 속력에 비해 아주 극도로 느껴지진 않음. 재미와 안정성 모두 갖춘 느낌이랄까.
그리고 런치 컨트롤을 자주 써도 차가 지치질 않음. 내가 차 몰면서, "이거 런치 컨트롤 자주 쓰면 차에 무리가지 않느냐?" 물어보니까, 포르쉐 차는 RPM 높게 쓰는 걸 염두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고 PRM을 써도 엔진/미션에 무리가 없다고 함.
트랙에서 달릴 차라서 아무때나 악셀 밟고 싶을 때 밟아도 고장이 없다고.
또 고속 영역에서 급가속을 할 때에도 출력이 모자라는 현상이 없음. 정차 상태든 고속 상태든 깊게 밟는 순간 튀어나감. 일반 모드에서도 깊게 밟으면 돌변하는 차임.
내부는 이런 모습. 가운데 시계는 초 시계도 짤깍 짤깍 돌아감.
실망스러운 부분은 내부 재질과 마감.
포르쉐의 기계적인 품질이야 세계에서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아무래도 벤츠 이상의 고급차임에도 불구하고 단차가 있음.
마감 부분이나 재질 부분은 제네시스, 렉서스, 볼보, 링컨이 훨씬 좋음. 물론 열거한 제조사들이 재질 부분은 신경 많이 쓰는 브랜드로 유명하긴 하지만 스포츠카라고 해서 마감이 나빠서야 되겠냐고.
스바루와 비슷하게 기술력에 몰빵하는 제조사라지만, 단차 심한 것과 마감 상태는 무척 실망스러운 부분. 현대/기아가 워낙 이런 부분은 잘하지만, 쌍용도 마감은 포르쉐보다 좋아보임. 이 차만 그런 것일 수도. (분명 카이엔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포르쉐의 상징과 같은 기아 노브 디자인. 모든 버튼이 기아 노브 주변에 다 쏠려있음.
자주 쓰면 적응이 되겠지만, 인체공학적이진 않음. 고개를 숙여야 제대로 버튼을 누를 수 있고, 버튼을 2열로 쭉 내려놓았기 때문에 대충 감각으로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 무조건 고개 숙여서 봐야 누를 수 있음.
그리고 오른쪽 밑에서 2번째 보면 머플러 그림 있는데, 배기음을 조절할 수 있음. 끄면 조용한 일반적인 SUV고, 켜면 부왕~ 그르릉 거림. 아쉽게도 팝콘이 파박 터지진 않음. 세팅을 더 과하게 했더라면 팝콘 터지는 소리도 들었을 텐데.
최신작이 아니라 전작이라서, 화면은 작은 편. 크게 특별할 것은 없음. 개인적으로 포르쉐는 스포츠카라 그런지 내부 디자인이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듦. 그냥 스포츠카라서 타는 느낌이랄까.
쉐보레 카마로, 포드 머스탱을 보더라도 투박한 편이지 정성스럽고 안락한 느낌은 원래 없음.
엠블럼은 역시 포르쉐가 예쁨. 예전 포르쉐는 5개 동그라미가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3개 동그라미로 바뀜. 옛날 계기판이 더 포르쉐답고 예쁨.
기아 노브에도 +/-가 있고, 스티어링 휠에도 패들 시프트가 있음.
스티어링 휠도 가죽이긴 한데, 질 좋은 가죽은 아닌 느낌. 원래 포르쉐는 내장재에 큰 관심이 없나 봄. 제네시스, 벤츠, 렉서스 같은 곳은 가죽 느낌부터가 훨씬 고급스러운 것에 비하면 역시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느낌.
의자도 가죽이 진짜 가죽이긴 한데, 1억 넘어가는 호화로운 차에 들어갈 만한 가죽 품질은 아님. 더구나 통풍 시트한다고 구멍을 너무 오밀조밀하게 뚫어나서, 천연가죽의 부드러운 질감이 안 느껴지고 뻣뻣함.
착좌감은 출발도 안 했는데, 허리가 단단하고 아플 것 같은 느낌. 약간 안락하면 좋겠다 싶은데, 스포츠카니까 감안하고 이해해야 할 부분. 대신 고속 영역이나 코너링에서 잡아주는 것이 일품.
애초 기술력이 워낙 좋아서인지, 앞/뒤로 쏠리는 것도 없고, 좌/우의 롤링도 거의 없음. 코너링을 세게 돌아도 마찬가지. 뭔가 물리 법칙을 상당 부분 극복해 나가면서 바퀴가 돈다고 해야 할까.
캐쥬얼 브랜드 차량에서도 허리와 어깨를 양쪽으로 잡아주는 버킷 시트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버킷 시트 흉내낸 것에 불과해서 잘 잡아주지는 못 했다. (일반 좌석보다는 낫긴 하다만.)
그런데 포르쉐 의자는 양 옆으로 많이 안 튀어나와 있는데도 잡아주는 느낌이 아주 좋음. 역시 스포츠 전문 브랜드라는 생각이 듦.
통풍 시트는 많이 실망스러울 것임. 수입차를 많이 타본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바람을 불어내지 않고 빨아들이는 방식이다보니, 손을 대도 시원한 느낌이 안 듦. 최대치로 틀어도 "바람이 통하기는 하는구나" 느낌이지 시원한 느낌은 없음.
통풍시트는 대한민국 차가 최고.
뒷좌석은 그럭저럭 가족들이 타기에도 인색하지는 않음. 국산 차로 치자면, 현대 투산, 기아 스포티지, 쌍용 코란도 정도의 크기인지라 나쁘진 않음.
실제 크기는 현대 투산이나 기아 스포티지보다는 작음.
차대는 아우디 A4, 아우디 Q5랑 공유하는 차.
거기에 엔진은 앞에 있고 V6 엔진이라 오리지널 포르쉐라고 볼 수도 없고. 그래서 진짜 포르쉐 골수들은 마칸이나 카이엔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나도 이 말에 동감.
포르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서 엔진이 안 들어가 있고, 미드십 엔진이 아니다. 그래서 이 차를 타고 나는 진정한 포르쉐를 느꼈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
이 차를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는 반반임.
먼저 가치가 부족한 부분부터 설명해 보자면 포르쉐의 정체성이 100% 발휘될 수 없는 차라는 점.
포르쉐를 타는 가장 큰 이유가 스포츠성인데, SUV 기반이다 보니 진정한 스포츠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 하차감을 원하거나 공간성을 원한다면 고급 SUV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포르쉐 자체를 좋아하고, 포르쉐 엠블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 살만한 차지만, 포르쉐 SUV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스포츠성은 포기하고 실용성을 택한다는 느낌이 강함. (그렇다면 왜 굳이 포르쉐를 사? 이런 느낌.)
그런데 사야 할 가치가 있는 부분 역시 명확함. 대체제가 없음.
마치 미니처럼 다른 것으로 대안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아예 없음. 대체 불가함.
스포츠성이 강한 BMW를 타도 세단을 타야 제대로 느끼지, BMW SUV 타면 명색의 BMW라고 할 만큼 스포티한 느낌은 없음. BMW X3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승차감이 말랑하고 부드러움. 핸들링이나 거동 자체는 BMW라서 살아있지만, 내가 스포츠 SUV를 몬다는 느낌이 아예 안 듦.
오히려 BMW X3보다 랜드로버 레인지 로버 이보크가 훨씬 스포티함. 그렇다고 엄청 빠른 속력을 자랑하냐? 그건 아님. 대체 불가함.
재규어 SUV는 안 타봐서 모르겠다만, 애초 재규어 SUV든 랜드로버 SUV든 포르쉐 SUV랑 출력 자체가 차이가 심해서 비교 대상이 아니지.
그런데 포르쉐 마칸은 밟으면 쭉쭉 나가고, 스포츠 모드에서 바뀌면 승차감이라든지 엔진 세팅이 180도 돌변함. 패들시프트도 있고, 기아 노브의 +/-도 있는데, 쓸 필요가 없다.
왜? 스포츠 모드에서는 밟아도 즉각 킥다운 되어서 기아를 2단~3단 내려주니까. 알아서 다 해줘서 수동 조작할 필요가 없음. 뇌에서 "다운 시프트를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알아서 센스 있게 내려줌.
거기에 일반 모드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SUV임. 그래서 포르쉐로 출퇴근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부부가 같이 몰아도 좋고, 가족용 SUV로도 손색이 없음.
쉐보레 카마로의 경우 스포츠카라서 아무리 일반 모드로 놓아도 느낌이 스포츠카임. 승차감, 조작감 등 모두. 그래서 이것으로 출퇴근하기에는 운전하기 전 각오(?)하고 타야 하는 마음 자세가 있는데, 포르쉐는 이런 느낌이 없음.
그래서 결론은? 100% 오리지널 포르쉐 느낌을 살리진 못 했지만, 명색의 포르쉐 만큼 매우 속도감 있으면서 일상용으로도 아주 잘 맞는 차.
그저 우와 포르쉐다 하면서 타느라
뭐 씹고뜯고 못해본게 아쉬워서
한대 갖고싶네요ㅌㅌ
나머지는 다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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