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이다.
집에 있으면, 생각의 문이 닫혀버리는 병이라도 있나보다.
생각이란걸 할수 없으며, 오직 멍하게 TV를 보며 영혼없이 웃기도 하고, 혹은 지나온 페이지가 기억나지 않도록 책을 읽기도 한다.
워드 프로그램을 켜두고 멍하니 백색 바탕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결심이라도 한듯 옷을 챙겨입는다.
정말 오랜만에 낚시대 하나를 꺼내고, 코펠과 우의까지 준비한다.
아침에 먹고남은, 오징어 넣고 끓인 콩나물 무국을 밀폐용기에 담고, 말린 헛개열매 한줌도 준비한다.
한며칠, 날씨가 미친듯 변덕스럽다.
비오다 맑았다가, 낮이 밤인듯 먹구름에 쌓였다가, 그런일 없다는 듯이 맑은 하늘에 햇살 비추기를 반복한다.
운전석에 앉을때까지 소나기처럼 내리던 비가, 출발과 동시에 멎었다.
낚시점에 들러서 크릴 한통을 준비한다.
낚시가 목적이 아니라 밑밥은 필요가 없다.
새만금 방향으로 가는길에 하늘을 까맣게 덮을만큼 무리를 이룬 철새들이 보인다.
얼핏 기러기라 생각된다.
'강화도에서 인사하던 녀석들일까?'
생각하며 웃다보니, 갓길에 차를 새워야만 한다.
추수끝난 논위에 떨어진 낱알보다 많은 까마귀들이 앉아있다.
어릴적부터 까마귀만 보면 반갑다.
마치 어릴적 천방지축의, 생각보다 마음이 앞선 말썽꾸러기 같은 나를 보는듯해 더 정겹다.
잘 먹어서 그런지, 깃털은 윤기가 흐르고, 생기가 넘친다.
깡총깡총 뜀박질하며 장난도 하고, 낱알을 골라먹기도 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본다.
'내껀 아니지만, 배부르게 먹고 건강하게 잘 다녀와서 내년에도 반갑게 보자꾸나.'
인사하고 출발한다.
새만금, 자리하고 하얀 도자기 잔에 헛개차 한잔을 담아 온기를 느끼며 낚시대를 지켜본다.
바다색이 둘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밝은 옥빛이고, 다른 한쪽은 먹물 머금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쪽빛이다.
두 바다를 가리지 않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귀여운 파도가 멈춤없이 밀려든다.
바다건너 늘 변함없이 자리하던 섬들은 정확히 절반정도가 구름과 안개와 물기운에 가리워져 사라졌다.
섬을 점령한 먹물같은 구름의 짙은 부분은 크루아상 처럼 그 짙어짐이 겹겹이 쌓여있어, 한껍질 한껍질 손으로 벗겨보고픈 생각이 든다.
수채화같은 흑백 도화지 저 너머로는 군데군데 하늘이 열리며 빛내림의 채색을 입힌듯 하다.
밝아졌다 흐려지며, 스프레이로 먹물을 뿌린듯, 수채화의 내려긋기를 한듯, 물내림 모양이 한동안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잔한 파도는 차례를 지키며 부지른히 다가온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우의를 때리는 빗소리가 정겹다.
눈으로 볼수있는 가장 먼곳에 하나만 남은 빛내림 공간에 서서히 먹물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제발, 힘내라!
어둠에 지지말고 다시 빛을 내려보렴!'
그것이 마치 내 희망의 마지막 조각인듯, 사그라듬에 가슴이 시려온다.
사이코패스의 장난처럼, 희망의 조각을 서서히 먹색으로 물들인다.
아마도 화가의 마음도 까만 먹색으로 변해가는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에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우의에 떨어지던 빗방울이 멈춘걸 느끼고 직각의 하늘을 본다.
젠장맞을.....
내 시선의 뒤편 하늘은 파란색을 하고있다.
진한 먹구름이 하얀 거품을 감싸고, 뒤에 조명을 켜둔듯 하얀부분은 빛을 머금고있다.
먹구름과 카푸치노 거품처럼 새하얀 구름들이 신난듯 행진한다.
인생도 이럴게다.
한곳에만 집중하면, 지나치는 행복들을 보지도 못하고 흘려버릴 수 있을테지.
부럽네용
그래서 점심은 뭐 자심용?
함바집 메뉴로다 머걸거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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