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론 민들레 게재된 유시민님의 칼럼 전문입니다. 제목도 그대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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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나는 '마녀사냥 도우미가 된 진보적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다음 주말에는 또 어떤 내가 알던 지난날의 운동권이 <조선일보>의 지면에 깜짝 등장할 것인지 그만 걱정하고 싶다"고 썼었다. ☞ '마녀사냥 도우미'로 변신한 운동권 출신들
그러면서 '마녀사냥 도우미'로 변신한 지식인 중에서 근래에 가장 선구적이면서도 가장 집요하고 지독했던 진중권 씨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리고 5월 마지막 주 <조선일보> 주말 특집 1면 커버스토리와 온라인 대문 '톱'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진중권 씨의 인터뷰였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적이 별로 없다.
이것은 <조선일보>와 진중권 씨 모두에게 적절한 타이밍으로 보인다. 최근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일체감과 노동 개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충성심 때문에 너무 오버하다가 인간적 도리의 선을 넘어서며 건설노조 고 양회동 열사에 대한 '분신 방조와 유서 대필' 조작 마녀사냥을 시도했다.
검찰과의 긴밀한 협조가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 마녀사냥은 누가 봐도 너무나 악랄하고 부실하기까지 해서 그동안과 달리 다른 언론들의 동참과 협조를 끌어내지 못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비판과 질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조선일보>는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반박, 해명, 후속보도도 못 하며 위기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다.
진중권 씨로서도 자기의 글과 말을 가장 앞장서 열심히 받아써 주던 <조선일보>의 난처한 상황이 강 건너 불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 권경애 씨가 큰 사고를 치면서 '조국 흑서 5인방'의 주가도 떨어졌다. 더구나 자신들이 그 탄생을 위해서 큰 힘을 실어 주었던 윤석열 정권도 낮은 지지율 속에 계속 악재가 터지고 있다.
얼마 전, 양곡관리법을 거부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돕기 위해 "언제까지 외국인 노동자와 70세(대) 노인분들 먹여 살리는 데 돈을 헛써야 되나"라고 말했다가 욕을 먹고 사과까지 했던 것도 망신스러울 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SNS에 아무 글만 올려도 받아써 주던 언론이 많이 줄었다는 점을 진중권 씨 본인도 느낄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조선일보>가 '환갑을 맞아 지난 25년 논객 인생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하고 대문짝만하게 실어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서로의 이해관계와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중권 씨는 이미 족벌언론이나 극우종편 등의 단골 출연자였는데 새삼스러울 게 있나'라고 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중권 씨는 물론 지난 몇 년간 <조선일보>와 알게 모르게 긴밀히 협력하고 공조해 왔지만, 직접 전면적인 인터뷰를 한 것은 의외로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고 최근 난처한 처지에 몰린 <조선일보>에게도 필요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진중권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중
진중권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중
'20년 전 안티조선 운동의 대표 논객이 조선일보와 자신의 25년 논객 인생을 돌아보는 화기애애한 인터뷰를 하며 안티조선 운동을 후회한다.' 이것이 바로 <조선일보>가 기대한 그림이었을 것이고,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을 진중권 씨는 실제로 인터뷰에서 화답하며 <조선일보>가 듣고 싶을 이야기를 해 줬다.
'인생에서 후회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답해달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에 진중권 씨는 답한다. "안티조선 운동이 그랬어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는데 꼭 그랬어야 했나 싶어요." 이번 인터뷰의 핵심은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바로 이 대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가장 악질적인 주특기를 발휘해서 '분신 방조와 유서 대필' 조작 마녀사냥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며 궁지에 몰린 시점에 과거 '안티조선' 운동을 대표했던 지식인이 그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장면, 이는 <조선일보>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을 빼면 진중권 씨의 인터뷰는 그동안 <조선일보> 주말 특집에 출연했던 다른 '변신한 운동권이나 지식인'들에 비해서 좀 심심한 편이다. 물론 친구였던 사람(조국 교수)의 등에 칼을 꽂으며 그 부인과 자식들까지 마녀사냥 했던 사람이 "애는 착했어요. 근데 나 같았으면 마누라를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잔인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스스로 <조선일보> 앞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 "잘못하면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죠"라고 말하는 뻔뻔함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그는 "이재명 대표는 사퇴해야죠"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보수로 가는 건 좋은데 중도와 같이 갔으면 해요"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
물론, 진중권 씨가 근래에 시간이 갈수록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을 늘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가 황급히 꼬리를 자르면서 권력에서 멀어진 정순신 검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마음의 부담감도 없어서였는지 "인간쓰레기" "사이코패스" 등의 특유의 저열한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비판(충고?)들은 '기계적 균형'을 억지로 맞추면서 '모두까기'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보일 때가 많다. 여전히 막강한 권력과 정보력을 자랑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해서 진중권 씨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럽고 대체로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숨기기가 어렵다.
‘조국흑서’ 필진, 왼쪽부터 김경율, 강양구, 진중권, 권경애, 서민.
'이쪽도 씹고 저쪽도 씹는' 것이 "원칙"이라는 진중권 씨의 '독설'은 왜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 있는 족벌언론들과 특수통 정치검사들 앞에만 서면 사라지거나 뭉쳐 있는 어깨를 안마해주는 방망이처럼 변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진중권 씨의 이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식인도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요. … 저도 쓸 만큼은 벌어요. 고소득자가 된 지 꽤 됐어요."
'안티조선 운동'의 대표 논객이라던 지식인의 오늘날 초라한 행태가 애처롭고, 이번 인터뷰의 행간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조선일보>의 만족스러운 비웃음 소리에 기가 막힌다. 지금이야말로 더 새롭고 강력한 '안티조선' 운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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