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류인규 변호사입니다.
며칠 전 존경하는 선배님과 통화하던 중 "사기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만드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다수의 사기는 사람 자체가 나빠서 벌어진다기 보다는 그 사람을 둘러 싼 여러 상황 때문에 발생합니다.
상황? 그건 핑계 아니냐구요?
맞습니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대부분의 정직한 사람들은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사기꾼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오늘 특별히 말씀드리려는 것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실패'를 치욕으로 생각하여 낙인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입시에서 낙방하거나 사업에서 실패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실패하지 않기 위해, 또는 실패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기로 연결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실제 사례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A는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3~4차 협력업체 쯤 되는 자동차 부품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처음 1~2년은 그럭저럭 운영이 되었지만,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서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대안으로 핸드폰 부품 쪽으로 활로를 뚫어보려 했는데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사이에 회사의 재정은 파산 직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A는 자신이 계획한 핸드폰 부품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라면 핸드폰 부품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회사가 망할 것 같았습니다.
A는 돈을 빌리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핸드폰 사업은 계획 단계에 있는데 당장 회사에 돈이 없다"는 것을 밝히면 사람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A는 거짓말을 합니다. "핸드폰 부품개발이 잘 되서 대기업과 납품계약이 확정 되었는데, 원자재를 사올 돈이 없다. 원자재를 사올 돈만 빌려주면 대기업에 납품해서 돈을 갚겠다"
A는 이렇게 거짓말을 해서 주변 지인과 거래처로부터 10억원을 빌렸습니다. 그 돈으로 야심차게 핸드폰 부품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도전해 보는 핸드폰 부품 분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았고, 1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10억은 회사 운영비로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A는 돈을 빌려준 사람들로 부터 고소당하여 감옥에 가게 됩니다.
어떤가요?
A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해도 되지 않나요?
사기 사건을 다루다 보면 이런 케이스가 정말 많습니다.
A는 자기가 생각한 사업에 대해 100%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빌린 돈을 나중에 꼭 갚을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겁니다. 다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지금 회사가 거의 망해 간다"는 말을 솔직하게 하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A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원칙대로 하자면 A는 망해가는 회사를 빨리 파산 처리 하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해서 새롭게 투자를 받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번 망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아무 경험 없는 젊은 창업자를 신뢰할 지언정, 사업을 하다 말아먹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만 이런 편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법원 마저도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을 색안경 쓰고 봅니다. 파산신청 과정에서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는 태도를 보이는 파산관재인 때문에 파산을 중도에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사업에 다 성공할 수는 없고, 특히 한번에 성공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실패는 당연한 것이고 파산은 때로는 피할수 없는 과정입니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음 도전에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6번이나 파산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2016년 대통령 선거때 경쟁자였던 힐러리는 이 점을 공격했습니다. "상습적으로 파산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으면서 자신은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다"고 말이죠. 그러나 당시 대선 결과에서 보듯이 미국사람들에게 이런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사업이 실패하여 파산한 뒤에 다시 재도전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년 사이에 스타트업 열풍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성공할 테지만 다수는 실패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겁니다. 이제는 우리도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남을 속이게 되는 상황. 이런 상황만 없어져도 상당수의 사기는 발생하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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