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일관계가 악화된 것을 일본의 입장에서 본 글 같습니다.
다른 카페에서 어느 분이 올리셨는데, 거기서도 찬반이 갈리더군요. 아마 구분도 다른 곳에서 퍼온것으로 봐서 인터넷상에서 퍼져있나봅니다...
지금의 한일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이유를 제법 그럴싸(?)하게 썼기에 잘 모르시는 분이 보시면 팩트를 혼동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이 주장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시면 제가 그쪽 카페에 댓글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카페명과 작성자는 제가 지웠습니다.
사린가스나 생화학 무기 개발하는 데, 굳이 비싸고 획득도 어려운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사용할 이유가 단 1 도 없음.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당시 쓰인 불화수소의 순도가 그 정도 높은 것이었는 지, 확인해보기 바람.
초등생 수준의 논리력만 있어도 개소리 궤변이라는 거 알 수 있는 주장인데.
한국인이 굳이 이런 일본의 궤변을 들고와 유포하고 다니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임.
이런 게 토착왜구가 아니면 뭔가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다시 국교를 맺어 공산주의에 대항하기를 원했지만, 한국은 일본이 사과와 배상부터 할 것을 요구하여 협상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일 양국의 협상이 본격화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였다. 5 · 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1961년에는 박정희가 일본을 방문해 일본 수상과 한일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고, 김종필은 일본 외상과 협의해 쟁점들을 조정해 나갔다.
그러나 한일 회담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당시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고, 한국은 청구권 3억 달러와 경제 차관 3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식민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모든 배상을 포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1964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 회담 반대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특히 6월 3일에 ‘굴욕적 한일 회담 반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이를 진압했다. 그런 다음 1965년 마침내 한일 협정을 마무리 지었다.
심화
일제의 징용이나 징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면 일본은 한일 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의 협정 추진이 성급했다는 비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량 반품
사린가스나 생화학 무기 개발하는 데, 굳이 비싸고 획득도 어려운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사용할 이유가 단 1 도 없음.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당시 쓰인 불화수소의 순도가 그 정도 높은 것이었는 지, 확인해보기 바람.
초등생 수준의 논리력만 있어도 개소리 궤변이라는 거 알 수 있는 주장인데.
한국인이 굳이 이런 일본의 궤변을 들고와 유포하고 다니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임.
이런 게 토착왜구가 아니면 뭔가
상식적으로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사세요.
'전략물자로 관리되는 일본의 초고순도 불산을 한국의 삼성, 하이닉스를 통해 순차적으로 북한에게 전달' 되는 거와,
'북한내 자체생산한 저순도 불산 또는 북한 우방국인 중국을 통한 불산의 북한 유입' 중에서
어느게 더 개연성 있는 얘기인지. 생각을 좀 해보라고요.
제 3자가 객관적으로 봐도 일본측 주장이 궤변인 게 뻔히 보이는 데, 한국인이라면서 일본의 궤변에 솔깃할 수 있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