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보기 힘든 차를 운 좋게 탈 기회가 생겼습니다.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답게(영국 제외) 작은 차들이 많고 디젤차 비중이 휘발유보다 월등히
높아 도로가 좀 씨끄러웠네요.
와보니까 이해는 될 것 같습니다. 도로는 좁고 규제는 빡쎄고....
시외곽으로 나가면 고저차 크지 않고 쭉 뻗은 도로가 펼쳐지니 배기량 작은 차들도 쉽게 속도를 낼 수 있더군요.
프랑스의 외곽도로는 편도 1차선이 90km, 2차선 110이며 고속도로는 130입니다만......
고속도로 1차선은 150밑으로는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다. 아우토반은 굳이 설명하자면
빗길에서도 최소 200이상 쏘는 차들을 많이 봤으니 다들 바닥에 붙이고 편하게 항속한다는 생각뿐이네요.
총 체류기간 40여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개인적으로 도로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프랑스가 가장 좋았고 영국이 가장 나빴습니다. 독일보다 프랑스 노면이 훨씬 조용하고 굴곡이 적어요.
시내도로 상태는 독일이 가장 앞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현지인이 보기에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운전했던 차량은 벤츠 비토 116투어러(136마력) 모델이고 유럽에서 4주 동안 5300km 가량 탔습니다.
처음 예상했던 차량은 푸조 테페였지만 푸조가 리스 요건을 까다롭게 바꾸면서 어쩔 수 없이 렌트를
하게 됐네요. 실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인이 리스차로 택시영업을 하다 적발돼 업체들 사이에 한국인에게는
리스하지 말자는 얘기가 돌았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비토는 스타렉스와 비슷한 크기의 승합차이고 운전한 차량은 9인승으로 옵션은 거의 없는 차였습니다.
어느 정도 없냐면..... 안개등이 없고 사이드미러는 손으로 접어야 하며 후방센서조차 없어요.
시트에 보일러가 안 들어오고 클러치 왼쪽 발판도 없었습니다. 블루투스는 아에 없는 건지 있는데 못쓴 건지...
원래 중앙석 헤드레스트가 룸미러 시야를 가리는데다 짐을 실으면 아에 볼 수가 없는 상황에서 후방센서의 부재는
상당한 제약이었습니다. 다행히 사이드미러 시야가 상당히 넓었고 적극적으로 보며 운전했습니다.
아쉬운 건 또 있습니다. 좌석 간격은 179인 제가 앉았을 때 사진과 같은(담뱃곽이 3열시트) 무릎공간이 나옵니다.
그러니 중1~고1 수준의 학생들이 앉았을 때는 공간이 지나치게 넓은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 8명과 그들이 가져온 캐리어와 침낭, 그리고 각종 공용물품을 모두 실으려면 트렁크 공간은 물론
시트 밑 공간도 활용해야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2,3열 슬라이딩 기능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차는 사실 벤츠답진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벤츠에 기대하는 옵션 가운데 절반 이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릴의 삼각별을 빼면 그냥 동네 아저씨가 타는 박스카정도? 실제 밴으로 나온 건 공사현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쓰곤 합니다. 가격도 현지 판매가 3천만원이 안 되니 벤츠가운데 가장 싼 수준입니다.
그런데 벤츠는 보급형과 고급형을 확실하게 구분해놨습니다 형제차 비아노로 가면 얘기가 달라져요.
옆줄부터 시작해 면발광 램프, 트립컴퓨터 전동시트까지.... 외관부터 실내까지 모두 고급으로 치장합니다.
그래서 '비아노 택시'라는 브랜드도 있어요. 호텔 앞에 줄을 선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없는 옵션을 늘어놓으니 못탈 차를 탔다는 느낌도 들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차 키를 받고 이 차를 처음 봤을 때 플라스틱 캡에 감춰진 철제휠을 보고 고급차에 대한 기대를 접었거든요.
예상에서 크게 빗나간 수준은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차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많으나 적으나, 짐이 많건 적건간에
원하는 만큼 나가고 밟는 만큼 섭니다.
"편의옵션은 적어도 주행에서만큼은 스타렉스와 비교불가" 이게 제가 느낀 두 차량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프랑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옆자리에 탄 학생이 네비를 보고 말합니다.
"지금 120으로 달리는 거 맞아요?"
"얼마나 달리는 것 같은데?"
"한 80? 90정도?"
"그래? 그럼 좀 더 올려볼까? 이제 150이야."
"그래도 되게 편하단 생각밖에 안드는데..."
유럽 도로가 워낙 잘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체감속도가 실제 속도보다 상당히 낮습니다.
승합차이고 이미 학생들과 짐 무게로 서스펜션이 눌린 상태이기에 뭐 속도를 높인다고 바닥에 깔리는 느낌이
든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속도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170까지는 무난히 올라가지만 이후에는 더딥니다.
이 차는 맘껏 달리라고 만들어진 차는 아니니 그런 것쯤 넘어가도 됩니다. 180으로 추월차선 달리다
똥침맞고 피해주니 순식간에 점되는 경우 몇 번 있었습니다. 주로 RS 형제들과 스위스 번호판 달린 벤츠가
그랬습니다. 지역 경찰차가 X3인 나라 스위스는 소득은 높고 차는 한국보다 싼데 정작 한국보다 심한 산악지형 투성이니
이웃나라에서라도 맘껏 밟아줘야 직성이 풀렸겠지요. 스위스 도로를 말하자면 터널 안에 갈림길을 만들 정도로
지형이 국가 터널 시공기술을 발전시켜줬습니다.
여하튼 비토는 주행거리가 늘어날 수록 마음에 드는것들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우선 에어백은 커튼가지 6개가 기본이고 법규상 전좌석 헤드레스트, 3점식 벨트가 적용됩니다.
키를 받고 주눅들게 만든 육중한 차체는 적응하게 됐고 수동 6단인 미션은 단단하게 체결된 느낌을 줬습니다.
핸들의 응답성은 세단보다 빠르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이질감은 전혀 들지 않았고 코너링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속도감응형이어서 주차하기 편했고 조사각 조정장치도 맘에 들었으며 수동임에도 적용한
크루즈 컨트롤도 유용하게 썼어요. 다만 속도가감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0km 단위로 올릴때는 풀악셀, 내릴 때는 브레이크를 써서 너무 빨리 떨어지니 이건 답력을 줄이거나
5km로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1km씩 내리다보면 브레이크 밟게 되고 그럼 풀려버리고...
압권은 출발할 때입니다. 클러치를 떼면 악셀을 밟지 않아도 1100rpm까지 스스로 엔진을 돌려줍니다.
이게 중요한 건 언덕 출발시 경사로 밀림방지장치와 같이 작동돼 클러치 조작에 실패해도 뒤로 밀리는
걸 상당히 막아주는 한편 대응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겁니다. 물론 경사로 밀림방지기능은 이미 많은 차량에
적용되고 있으나 자동으로 엔진을 돌려주는 기능은 처음 접해보는 거라 놀랬네요. 그리고 두 가지 모두
요즘 수동 차량에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제차에는 모두 없는 기능이어서 혼자만 생소한 건지.....
또 하나 장점은 연비입니다. 총 주행거리는 사진상 나온 거리보다 약 300km 더 되는데요.
사진에 나온 연비를 계산해보니 약 13km/L 네요. 파리와 런던의 교통지옥을 모두 경험했고 고속도로는
평균 130~150정도로 주행한 결과입니다. 사람 8명과 그들의 짐을 싣고요. 트립상 연비와 실제 연비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확인하진 않았지만 거의 비슷할 것 같습니다. 혹시나 몰라 사진을 찍었는데 110에 크루즈를
맞춘 연비는 20km 좀 넘게 나옵니다. 풀악셀 했을 때 6km 이하로는 거의 안 내려갑니다.
전체 연비에 오토스탑이 기여한 게 한 1km이상은 될 겁니다. 일발시동인데다 클러치를 조금만 밟아도 시동이
켜져 신호대응이 늦거나 앞차와 벌어질 걱정은 없었어요.
그렇게 나름 좋은 기능들이 받쳐줘 여행 내내 차에 대한 걱정은 물품도난만 걱정하면 끝일 정도로 적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비싸고 고성능의 차는 아니지만 부담없이 타고 다녔던 이 차를 공항에서 반납할 때 한 가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빗길과 먼지를 그렇게 맞아가며 탔는데 시간상, 공간상의 이유로 외부세차를
해주지 못했다는거.... 세차장이 드문데다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는 입장에서 개인 시간을 빼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누군가 유럽 가서 렌트한다고 하면 저는 이 차 추천합니다. 한국에 올 때 옵션들이 많아져 가격이 엄청 오르면
고민이 되겠지만 승합차를 사야 한다면 기꺼이 살 의향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일 평균 200km 거리를 낯선 땅 낯선 교통체계에 적응하며 다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평생 가장 저비용으로 가장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한 여행이었기에 차에 대한 만족도가
좋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차는 그 감정을 떠나 실속형 외제차로서 한국에 꼭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밖에 운전했던 차량으로 오펠 자피라와 르노 스케닉, 폭바 트랜스포터 등이 있어요.
자피라를 제외하고 주행거리가 짧아 많은 느낌을 전달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저 재미나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선 오펠 보기가 쉽잖은데 외국에선 자주 보이더라고욧 ㅎㅎ
일본에만 봐도 처음보는 벤츠, 폭스바겐등등...나라가 아직 못살고 외제차 수요층이 많지 않아서 일까요?
잘보고 가욤 ^^
혹시 필로트...........하셧던건가요.....??
닷지 스프린터 사설 구급차는 예전에 버려진거(...) 한 대 본 적 있고 벤츠 스프린터도 은근 자주 보이더라고요.
깡통 스프린터는 정말 철 깡통에 엔진 달았구나 싶을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것도 그와 비슷하네요. 헤드라이트도 매우 비슷합니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같은 돈 많은 사람들이 타는 스프린터는 어우 +_+ 같은 차가 맞나 싶습니다.
비아노가 뭔가 싶어 찾아봤는데 S클래스 승합차 버전이라 하는게 적당할 것 같네요.
전 태국과 필리핀에서 도요타 하이에이스(현지명 커뮤터)를 며칠간 탄 적이 있는데 그것도 인상깊습니다.
맨 뒷자리에 타는데도 꽤 조용하고 진동이 적더라고요.
좌석 간격도 넓고 무엇보다 천장이 높아 타고 내리기도 편했습니다.
다만 전면이 봉고3처럼 앞이 짧은 형태라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안전 테스트를 잘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습니다. 다마스 돌아다니는거 보면 가능할 것 같긴 합니다 -_-
태국 호텔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던 폭스바겐 트랜스포터도 생각나네요. 그 비싼 물을 공짜로 몇 개씩 주던 -0-
벤츠 E1000이라는 E클 기반 리무진도 기억납니다.
유럽 가면 비토 한번 타봐야겠네요. 마음같아선 비아노 ㅋㅋ
구형 디젤차와 신형 디젤차 비교해보면 신형 디젤차가 출발하기가 더 수월하더군요. 물론 DPF때문에 더디게 나가지만 ㅎㅎ 일단 탄력붙으면 쫚쫚 치고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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