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이 발발하자 병력의 소모를 우려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포로출신들 중 체코슬로바키아인
전향자들을 모아서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들은 전쟁이 끝난 후 체코슬로바키아를 독립국으로 만들어준다는 말을 믿고 기꺼이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전쟁 기간 동안 포로들이 합류해 총 병력이 3만을 넘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공산화된 러시아가 1차대전에서 빠지게되자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갈곳이
없어졌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프랑스는 이들을 서부전선을 이동시켜서
독일과의 전투에 투입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서부전선을 이동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1차대전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공산혁명으로 러시아에서도 내전이 발발해서 결국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시베리아횡단 철도를 통해서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것을 진로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적군(공산혁명 군대)과 백군(공산혁명에 반대하는 귀족, 러시아정규군)간의 내전이 벌어져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힘을 길을 열고 갈 것을 결정하고 기차를 점령하고
점령한 기차에 무기를 장착해 전투에 대비한 후 기차를 블라디보스토크로 몰아갔습니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5,000KM의 기차여정을 시작한 것이죠
이들이 무기를 소지한 것을 염려한 적군은 이들의 무기를 압수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싸워서 물리쳤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던 만큼 자신들의 앞을
막는 자들과 계속 전투를 치르면서 달려갔습니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노획한 무기로
기차의 방비를 더욱 튼튼이 했고 노획한 보물도 상당한 수량이었다고 합니다.
극동러시아의 항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 시베리아를 욕심네고 있던 일본은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의 귀환을 지원한다는 구실로 7만 명의 일본군을
시베리아에 투입합니다. = 시베리아 출병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고 미국에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이 그토록 원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동안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하면 독립군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일본군과의 전쟁을 위해 무기와 탄약을 구하는 문제가 시급했던 독립군은 체코슬로바키아군단과 교섭에
나서게 되고, 그 결과 1,200정의 소총(주로 모신-나강 위주)과 80만발의 탄약, 박격포 2문과 기관총 6정 등
다량의 당시로서는 신식무기를 구입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독립군이 체코군단에게 구입한 무기들은 청산리전투에 사용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독립된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싸웠단 점에서 독립군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코슬로바키아군단에게서 구입한 무기로 독립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때 쓰였던 소총을 선물로 가저가면 좋겠네요.
저때 쓰였던 소총을 선물로 가저가면 좋겠네요.
체코하고 슬로바키아 사이도 좋지 않던데
그런 역사적인 선물로 관계개선 시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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