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때 미 공군이, 무다구치 렌야가 있는 지휘소를 보고
"우리 편이다. 폭격하지마라" 라고 했을 정도로
무능함의 상징인 어둠의 독립운동가, 무다구치 렌야
이 위대하신 분이 우리한테 웃음거리로만 기억되지만,
사실 우리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무능했다고 보기엔, 일본군 입장에서는 당시 나름 유능한 전적들이 꽤 있었다.
(쪽빠리 빠는 게 아니라, 우리 기억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해 보충하려는 차원이다. 재미로..!
아무튼 우리한테 도움을 준 건 사실이면서, 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도 사실.
반면, 위안부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건, 조선인한테는 역시 긍정적이었던 인물)
1. 이 인간이 보급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굶어죽어가는 병사들에게 한 그 유명한 말
<일본인은 원래부터 초식동물이다.
이렇게나 푸른 산에 둘러싸여 있으니,
식량이 부족하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임팔 전투중에 보급이 끊기자 떠든 말이다.
애초에 20일이면 전투가 완료될 것으로 보고, 20일치 식량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영국군 군수품을 뺏아 먹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조건 황당한 계획만은 아니었던 게,,,,
(i) 그보다 2년전 싱가폴전투에서 실제 그게 통했다!.
간단한 보급만 주고, 영국군과 전투해서 승리하고,
영국군의 보급을 빼앗아 먹으며 계속 영국군을 각개격파해서
말레이지역에서 승리를 맛보았다.
영국군 보급이 하도 많다 보니, 너무 기쁜 나머지
일본군은 '처칠레이션'이라고 이름까지 지었었다.
무타구치 렌야는 그 기억에 빠졌던 것이다.
(ii) 보급의 중요성과 사병들의 굶주림에 대해 간과하고, 일본 무사도 정신만 강조한 게,
저 인간의 발언이 대표적으로 유명해졌을 뿐, 저 인간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일본군 전체가 죄다 다 비슷비슷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2. 버마 임팔전투 패배
한국 최고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여명의 눈동자에도 나왔듯이
밀림을 헤치고 나가는 도중 대부분이 전사한 참 뭣같은 전술로만 기억되지만
중간 과정을 보면, 무다구치 렌야가 직접 기안한 계획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i) 막무가내로 밀어부친 게 아니라, 영국군의 동태를 6개월간 나름 파악을 했었다.
그리고, 무다구치 렌야가 직접 세운 계획은 이랬다.
상황 : 영국군 전초 사단 2곳과 후방 본진 임팔 기지가 떨어져 있는 구조
작전 계획 : 진격 부대를 3개로 분할
(1) 선발대 : 일주일 먼저 출발해서 중간에 매복
(2) 첫 공격대 : 전초 기지를 공격하면, 본진에서 지원을 나올 것이고
이때 선발대가 지원군을 기습하여 허리를 차단 및 포위 섬멸
(3) 본진 공격대 : 영국군 본진 임팔 기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이
텅 비게 된 임팔 본진을 빈집털이로 승리!
이것만 보면, 나름 작전 계획은 괜찮게 볼만하지 않은가?
영국군이 예상 못한 허를 찌르는 작전 취지다 보니
밀림숲을 헤쳐가는 미칫 짓을 하게 된 것이었고,
사단장들과 참모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반대했던 것.
(동원된 소와 말이 수만 마리. 그정도 물자면 차라리 탱크 몰고 가는 게 더 싸게 쳤을 비용
그리고, 중간에 강 하나 건너다가, 1/3을 잃었다.)
(ii) 그런데, 거의 될 뻔 했습니다!!
이 안될 것같았던 작전이,
작전 실시 초기에는 실제로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서
본인은 물론 작전 반대했던 사단장까지도
"어? 이기겠는데?" 라고 믿을 정도로
거의 다 되는 듯 싶었을 정도로 공격이 먹혀 들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대갈빡이 붕어 수준이 아니라는 게 어느 정도 입증된다.
(이런 억지 계획이 먹혔던 것 또한 처음은 아니었다.
왜냐면, 무다구치 렌야가 바로 만주사변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주위 반대를 꺾고, 장교 시절 본인의 직위에서는 안되는 불법 전투를 벌여서
결국은 승리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어차피 일어날 일이기는 했었지만,
어찌되었던 순전히 단 한놈의 똘아이성 개인 플레이로
국제 정세 판도를 바꾼 게 바로 무다구치렌야였다.
그 결과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별을 다는 파격적인 승진을 해버린 경험을 했었다.
그러니, 정신력을 마른수건 쥐어짜어 짜듯, 억지로 억지로 어찌어찌 하다 보면
결국 이긴다는 믿음이 생기는 건, 그 입장에선 당연한 것)
그리고, 이후, 임팔에서 밀리는 와중에도 일본군이 나름 선전도 하기는 했음
당시 상황은 영국군은 규모는 있었지만, 전투 경험이 전무한 논산 훈련소급 사단들이었고
일본군은 수 년 동안 다져진 전투경험이 빵빵한 놈들이 많았음
그래서, 허접해 보이는 방공호에서 영군군 공습에도
무려 일주일 이상 10일 정도 안무너지고 잘 버팀.
우리가 잘 아는 그 용감하다는 네팔 구르카 용병들도
일본군 잡는데 애를 먹었을 정도
실패 원인
그럼에도 임팔전투에서 실패했던 원인은
무다구치 렌야가 생각했던 영국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i) 영국군 규모가 생각보다 많았음.
쳐들어간 쪽이, 방어해야 하는 쪽보다 몇 배가 많아야 승리하는 법인데,
나름 사전준비를 했음에도, 영국군 규모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무조건 정신력만 강하면, 이긴다고 여겨버림.
이때 영국군 규모가 일본군보다 몇 배 더 컸음. 포위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음.
(ii) 민첩했던 영국군의 대응
싱가폴전투 때와 달리, 영국군 전초기지들은 패배가 예상되면 신속하게 후퇴를 해버림.
후퇴하면서 군수품과 식량을 죄다 파괴해버리도 도망침.
(iii) 보급과 제공권 확보의 실패
영국군 식량을 터는 게 계획이었는데,
남긴 게 없으니, 일본군은 굶어죽게 생김
그런데, 계속 무리하게 공격공격만 외침.
그것도, 반대하던 사단장 짜른다고, 수뇌부가 갈라져서 일주일 넘게 시간 낭비하면서
싸우는 바람에 타이밍까지 놓쳐버림.
반면, 영국군의 상황은 달랐음. 제공권을 계속 가지고 있었음.
고립된 영국군에 무기와 식량을 계속 공급함.
영국군 증언으로는 전투 전이나 이후나, 군수품 부족은 없었다고 함.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국군이 군전력 보강을 하는데
그 수준이 지금 미군처럼 보급을 해버림.
비행기로 하루(?)만인가 정도 되는 단시간에
영국군 "1개 사단 병력"을 항공으로 임팔 기지로 공수해버림.
인류전쟁사에서 딱 한번 연출된 명장면임ㄷㄷㄷㄷ
결국, 작전을 짰을 때, 간과했던 부분, 여럿 있지만,
특히 보급의 중요성을 간과한 점이 치명상을 입고 대패해버림
(그런 부분은 무다구치 렌야 혼자서 그랬던 건 아니고, 그 자리에 다른 놈 갖다놨어도 비슷비슷
일본군 전체가 다 그 모양 그 꼴이었음)
병사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비슷한 예를 하나 들면
일본 육군이랑 앙숙이던 일본 해군
미드웨이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이나 말아먹은 대패를 했던 일본 해군도
한 달 후 파티에서 별과 장교들은 웃고 떠들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낸 반면
수병들은 전쟁 끝날때까지 해외로만 뺑뺑이 돌려서
일본 국내에 패배했다는 소문이 안나게 은폐하고
일본에 돌아온 부상병들은 '패배한 놈'이라고 철저하게 무시함
초기의 승리에 대한 기억은, 결국 자만심이라는 독이 되어서
결과를 다 망친다는 교훈을 주는 인물임
사람은 역시 겸손해야 함
살만큼 살다 가셨죠
지들 모임에 가서
끝까지 지가 잘했다고 우기다가
욕쳐들어먹고 쫓겨났다는 일화가 ㅎㅎ
메이지유신 이전 1200년간에 걸쳐 일왕에 의한 육식금지령으로 생선을 제외한 육식이 금지되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음식을 보면 고유의 고기요리가 없습니다. 돈가츠의 원조는 슈니첼이고 부타노가쿠니는 중국의 동파육,조선의 장조림..등 대부분이 다른나라 요리를 개량한것들이죠..여튼 무다구치 렌야..어느한편으론 대단한 인물이긴 한데..6.25동란때도 저런분이 우리 국군에 계셨다고 들었는데..참
군단을 버리고 도망침
미국장군 : 니 군대 어딨어?
유재흥 : 몰라요
그 바람에 '전시작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서 아직도 미국이 갖고 있음
그런데, 노무현 정부 시절, 전시작전권 회수 계획 세우니까
그 노인네가 '원로'랍시고, 회수 반대하는 성명 냄
지금 국립묘지
만주군관학교출신인 걸로 암
그리고, 백선엽도, 전공이 증명된 거 없고, 순전히 본인 이야기 뿐인 걸로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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