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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의 중론을 폐함" 2021. 8. 4. 2:15 작성자: 유전
유전 24-02-19 18:04 : 과거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을 썼는데 용수(인도명 나가라주나 출생 - 사망 150년 추정 ~ 250년 추정)는 "중론 中論"이라는 저서를 남겼고 이 중론으로 인해 중관학파가 생겼으며 오늘날 한국에도 몇몇 교수와 학자들이 중관학파를 신봉하면서 잘못된 오법을 한국 불교 전반에 퍼지게 하고 있어 그 폐해가 심각하다.
용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간단히 보면 아래와 같다.
"나가르주나(용수)는 바라문 계급 출신으로 남인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기 때문에 바라문들이 베다를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문장을 암송하고 뜻을 이해했다. 그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세상의 깊은 진리를 통달했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고자 은신술을 익혔다. 그들은 방술을 이용해서 왕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모두 범했다. 몇 달 후 후궁 가운데 임신한 사람이 생기자 왕은 범인을 잡을 것을 명령했다. 마침 지혜로운 신하가 있어 침입자들을 처단할 수 있었으나 나가르주나만은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가르주나는 비로소 욕망이 고통의 근원이며 재앙의 뿌리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출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애 (나가르주나 『중론』 (해제), 2004., 서정형)"
중론에 대해서 한국의 역대 깨달았다는 고승들 중에서는 언급한 경우가 거의 없으나, 성철스님이 "중도 실상((實相)"을 설법하면서 비교 차원으로 용수의 중론을 설명한 경우가 있지만 중론을 인정하여 발언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철스님의 중도(中道)에 대한 기원은 석가모니 설법 경전인 앙굴마라경에 잘 나타나 있다.
"<앙굴마라경> 그렇다. 문수사리여, 진실한 나[我]에 대해 세간의 그와 같은 삿된 소견과 모든 딴 망상(妄想)으로 '해탈은 이와 같으며, 내가 이와 같이 세간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이는 또한 여래의 비밀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를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는 말만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니 외도의 원인이 생긴 것과 같다. 그는 세간에서 어리석음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출세간 사람들도 비밀한 말씀을 파악하는 지혜에 어둡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1승(乘)인 중도(中道)를 말했는데 그 도는 치우치는 두 쪽을 떠났나니 나가 진실하고 부처가 진실하고 법이 진실하고 승가[僧]가 진실함인 그것이다. 그러므로 중도(中道)를 '대승'이라고 말한다."
위 글의 핵심인 "여래는 1승(乘)인 중도(中道)를 말했는데 그 도는 치우치는 두 쪽을 떠났나니 나가 진실하고 부처가 진실하고 법이 진실하고 승가[僧]가 진실함인 그것이다." 에서, 중론은 '진실한 나, 나가 진실하고'에 해당되는 진아(眞我) 즉 '참 나"를 인정하지 않고 위 경전에서의 설법처럼, 사이비 외도에 해당된다는 "무아(無我)"만을 강조하여 심지어 부처의 경지인 석가모니 조차도 "참 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불경에 수 없이 등장하는 "무아(無我)"에 대한 설명은 무엇인가,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이미 힌두교에서의 "아트만(나, 아我)은 없다" 는 것을 설명한 것이며, 깨닫지 못한 중생에게는 진아 즉 참나가 없다는 뜻이며, "제법무아"와 같이 모든(제) 법에는 나 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어서 헌법 자체에 인격이 없듯이 모든 법과 매트릭스 시스템 자체는 슈퍼 울트라 AI(인공지능)에 의해 작동하지만 인공지능에 진아 즉 참나가 있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용수의 중론과 반대로 비교될 수 있는 것이 마명보살이 지었다는 "대승기신론"이 있는데 조계종 강원(강의 모임)의 4대 과목으로 원각경, 금강경, 능엄경과 함께 대승기신론이 오래도록 포함되어 왔다.
위와 같이 역대 깨달은 고승들이 용수의 중론을 가르치지 않고 그 대신에 대승기신론을 가르치는 것은 용수의 중론이 부처님 설법과 매우 어긋나기 때문인데 무아론과 공사상에만 빠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이 많아지고 세속법도 함부로 지키지 않는 무법천지의 세계관이 되기 때문이다. 유물론적 공산주의 사상과 매우 비슷하다.
대승기신론에 주석을 붙였기 때문에 소(疏 소통할 소)를 붙인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를 오늘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 대승기신론소는 그 당시의 중국에서도 대승기신론을 가장 잘 설명한 해석서로 인정받아 "해동소"로 불리기도 한다.
아래와 같이 대승기신론소의 3페이지에서 중관론은 물론 유식학(유가론 등)까지 비판하면서 대승기신론만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한 원효대사의 지적이 매우 적절하다.
대승기신론소는 문단의 처음에 論(논)이 있으면 대승기신론의 원문을 뜻하고 다음 문단 시작에 疏(소)를 붙인 것은 대승기신론 해당 원문에 대한 추가 해석을 적은 것이며, 별기(別記)는 대승기신론 원문과 상관 없이 별도의 첨언을 한 것이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3 / 181] 쪽[別記] 이 『대승기신론』의 내용은 모든 교학의 핵심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교학의 단점과 천착하는 부분을 논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중관론』과 『12문론』 등 중관파의 논서는 모든 집착을 다 논파하고 논파 자체까지도 논파하여 논파하는 주체와 논파하는 대상을 모두 인정하지 않으니, 이를 논파하는 방면으로 치달리기만 하여서 보편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논의[往而不?論]라고 한다. 그리고 『유가론』과 『섭대승론』 등의 유가행파의 논서는 깊고 얕은 이론을 모두 인정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어 놓고는 자신들이 인정한 교법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했으니, 이를 주기만 하고 빼앗지는 못하는 논의[與而不奪論]라고 한다. 하지만 이『대승기신론』은 지혜로운 측면과 자비로운 측면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깊이 있는 이론과 풍부한 내용을 동시에 담고 있다."
유전: 아래의 실차난타 사전 내용과 같이 실차난타가 낙양에 도착한 시기가 695년으로 대승기신론의 판본에서 실차난타 번역본은, 원효대사의 입적이 686년으로 대승기신론소가 이미 쓰여진 후대에 기술된 것이기 때문에 대승기신론의 원전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마땅함. 그러면 법명 진제 즉 파라밀타의 번역본(553년)만 남는데 이 번역본 또한 완전하지 않고 대승기신론을 마명보살이 지었다는데 증거가 되기 부족하다고 함. 하지만 누가 지었더라도 원효대사 시대에 알려져 있던 대승기신론이 불경 전체의 진의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확인되지 않은 지은이 때문에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가리키는 손가락이 못생겼다고 하는 꼴임.
원효 (元曉, 617년 ~ 686년)는 삼국시대와 신라의 고승이자 학자, 사상가, 작가, 시인, 정치가이다.
"대승기신론의 첫 번째 번역본[初本]은 서인도(西印度) 삼장법사(三藏法師) 파라말타(波羅末? 법명:진제)의 번역으로, 곧 진제(眞諦)가 양나라[梁] 무제(武帝) 승성(承聖) 3년 세차(歲次)로는 계유(癸酉, 553)년6) 9월 10일 형주(衡州) 시흥군(始興郡) 건흥사(建興寺)에서 양주(揚州) 출신 사문(沙門) 지개(智愷)와 함께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 두 번째 번역본[此本]은, 먼저 우전국(于?國) 삼장법사(三藏法師) 실차난타(實叉難?)가 대승기신론 범문(梵文)을 인도에서 가져와 장안에 이르렀고, 또 서경(西京:장안) 자은탑(慈恩塔) 안에서 옛날 범문을 얻게 되어, 실차난타가 의학(義學) 사문(沙門)인 형주(荊州)의 홍경(弘景)ㆍ숭복사[崇福]의 법장(法藏) 등과 함께 대주(大周) 성력(聖曆) 3년 세차(歲次)로는 계해(癸亥)년7) 10월 임오삭(壬午朔) 8일 기축(己丑)에 수기사(授記寺)에서 화엄경(花嚴經)과 대승기신론을 차례로 번역하였다. 사문(沙門) 복례(復禮)가 번역문를 써서 2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옛 번역과 비교할 때 새로 첨가된 내용도 있고 없어진 내용도 있는데, 이것은 번역자의 뜻이거나 범문(梵文)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승기신론2권 신역대승기신론서 중의 내용)"
실차난타[ 實叉難陀 ]출생 - 사망 652년 ~ 710년
우전국(于?國) 출신. 695년에 범본(梵本) 화엄경을 가지고 낙양(洛陽)에 와서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번역하여 699년에 80권으로 완성함. 또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대방광보현소설경(大方光普賢所說經) 등 19종을 번역함. 704년에 고국에 갔다가 708년에 다시 장안(長安)에 와서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번역을 계속하다가 병이 들어 입적함. [네이버 지식백과] 실차난타 [實叉難陀]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곽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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