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가 -
많은 분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맞습니다. 제가 봐도 말도 안되 보입니다.
그런데요. 전 정말 봤습니다. 기억의 오류 아닙니다.
얼굴 하나 하나, 옷 하나하나, 앉은 위치까지 생생했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분 있으시면 "개구리소년 찾기 생방송" 제발 찾아봐 주세요.
방송당시 진행하셨던 분들만 수십명이 넘습니다. 그 분들도 기억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헛소리도 아니고, 어그로꾼도 아닙니다.
범인을 꼭 잡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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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전 개구리소년 목격자 최소 4명중 1명입니다.
이 글로 인해서 제가 노출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은 가장입니다.
이 글은 하늘이 뒤짚어져도 사실입니다.
부디 널리 퍼져서 범인을 잡는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나이 48입니다. 1991년 당시 고1 이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적는글은
2020년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에 제보한 내용이며,
2010년경에 다음 “개구리소년찾기 카페”에 올렸다 강퇴당한 내용이며,
2008년경에 모신문사(신문사명은 기억에 안남)에 제보한 내용이며,
2006~7년 경에 “그것이 알고싶다”에 제보한 내용이며
2002년에 “112”에 제보한 내용입니다.
2000년쯤에 대구경찰서 담당자 바꿔달라고 했는데, 자리에 없다고 연락준다고 하더니 무소식 이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우선 1991년에 서울 여의도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 이었다는 것과, 그 당시 거주지가 서울 동작구 노량진 본동 이라는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시간에 그 곳에 있는 것이 합당하고,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등본 사본, 신분증 (75년생인것과, 1991년도에 서울 동작구 본동에 거주했다는 초본)
서울 여의도 고등학교 졸업사진 -> 이사한지 얼마 안되서 안방 옆 창고에 있는거 같은데, 자고있는 집사람이 깰까봐 못 뒤지겠습니다. 지금 6월 8일 새벽 3시입니다. 밤샘 후 자고 일어나서 찾아서 올리겠습니다. 동작구는 9학군인데, 왜 7학군 고등학교에 갔느냐는 의심 할수도 있을까봐 미리 밝혀둡니다. 그 해에 9학군 인원이 초과되서, 7학군인 여의도고등학교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1991년 3월말경(당시에는 정확한 날짜 기억했음) 저는 서울 여의도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 이었습니다. 3시30분~4시30분쯤(그 당시에는 정확히 기억했음) 하교후 집으로 가기위해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인 여의나루 선착장 부근 버스정류장에서 68번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집으로 가는 68번 버스 노선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갈아타지 않고 직행하는 버스는 68번 1대 뿐이었습니다. 68번 버스는 여의도에서 노량진을 통해서 강남으로 가는 버스입니다.
제보자 확인사항
1. 1991년에 여의도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2. 집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 본동
3. 68번 버스를 타고 등하교
버스를 기다리는중 145번 또는 76번(당시에는 정확히 기억했으나 지금은 혼동됨. 노선은 동일했음) 버스가 정차했습니다. 145번 또는 76번 버스의 노선도는 동일하며 신대방동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버스입니다.
제 바로 앞에는 버스 맨 뒷자석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고(지금 버스와 다르게 뒷창문이 활짝 열렸음), 딱 보아도 앵벌이 같은 애들이 5명이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왜 앵벌이 같았냐면, 애들 얼굴이 며칠동안 세수를 안한 땟국물이 가득한 상태의 얼굴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저 아이들 집나온거 아니야? 앵벌인가? 라고 했었습니다. 그 당시 앵벌이가 한참 논란이 되었던 때였습니다. 애들은 한강과 63빌딩을 보면서 엄청 신기해 하면서 떠들었습니다. 그때 앞에 앉아있던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둘이 그 애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 애들은 순간 움짓하면서 조용히 했습니다. 하지만 신나보였습니다. 특히 가장 뚱뚱한 아이와 가장 마른 아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남자 2명의 눈치를 살피면서 흥분해 있었습니다.
자리 배치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5명이 각각 앉은 위치도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밖에서 안을 잘 볼수 있느냐는 의견이 있으실텐데요. 위의 이미지와 비슷합니다.
뒷 창문은 활짝열려있었고, 가장 뚱뚱한 아이의 액션이 너무 커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보게되었습니다. 또한 썬텐도 없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인도 보도블럭이 있어서 위 사진보다 훨씬 높게 잘 보입니다.
위의 이미지를 보시면 남자가 2명이 있었습니다. 20대 중후반에 키는 170중반, 마른 몸매에, 스포츠머리에 기지바지(남자 2명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일어설때 봤음)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조용히 시키던 한 남자랑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요. 눈빛이 날카로웠습니다. 제가 자동으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으니까요. 고1의 눈에는 조폭 아니면 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에는 조폭에 좀 더 심증이 갔습니다. 하지만 군대도 다녀오고, 조폭도 봐보고 생각해보니..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지금은 조폭은 아니였던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범인이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상상이 안됩니다. 앵벌이 하려고 납치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분명 그들은 무서워 했지만, 두려워 하지는 않았거든요.
남자1과 남자2는 서열이 달라보였습니다. 남자1은 좀 온순해 보였고, 남자2가 눈매가 날카로웠습니다. 남자2가 남자1에게 조용히 시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상황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노숙자 같은 아이들, 그들을 감시하는 남자둘. 그렇기에 세심히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습니다.
다음날은 학교에서 시험이 있어서 일찍 하교했습니다. 1~2교시만 시험보고 바로 하교한거 같습니다. 3월말이나 4월초에 국,영,수만 보는 시험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정확한 날짜도 기억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여튼 아이들을 본 다음날입니다.
낮 12시쯤 이었던거 같습니다. 집에와서 TV를 틀었는데 “생방송 개구리소년 찾기” 방송을 막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지 일주일 되었다고 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최초의 방송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KBS였고 여자 아나운서는 이금희 아나운서 였던거 같습니다.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을 보여주는데 어제 봤던 5명의 아이들 이었습니다. 입고 있는 옷도 똑같았고, 얼굴도 똑같았습니다. 5명 모두 똑같았습니다.
방송에서는 제보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전화를 들었는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때 방송으로 제보들이 쏟아졌습니다.
약 10여건 쏟아졌는데, 가장 많은 제보가 들어온 것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제가 보았던 버스에 대한 제보였습니다.
10여건의 제보중에 145번인가 76번 (신대방동에서 여의도를 거쳐서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에서 목격한 동일한 버스이동 시간대, 각각 다른 정류장, 각각 다른 사람 3~4명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아래 동그라미가 사람들이 제보한 지역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전 안심하고 금방 찾겠구나 생각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제 말이 진실인지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방송국에 “생방송 개구리소년 찾기” 방송 테이프를 찾아서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저는 KBS라고 생각하지만, 아닐수도 있기에 MBC, SBS(SBS는 창사전 같기도 함). 이 3곳만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아니면 대구경찰서 수사팀 또는 개구리소년 가족분들은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요?(유가족 분들중 옛날 기억을 다시 떠올려서 상처를 받지 않으실 만한 분만 접촉 부탁드립니다) 최초의 방송이자, 많은 목격자들의 제보 영상이니까요.
동일한 시간, 동일한 버스, 각기 다른 정류장, 각기 다른 제보자 4명 이상..
제가 하는 말이 거짓말 일까요?
그 날 분명 아이들은 서울에 있었습니다. 다음날 언론에 노출되자 어느 순간 살해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 145번 또는 76번을 탔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신대방동과 서울역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대방동에는 왜 갔을까? 서울역으로 가서 대구로 내려갔을까? 그러면 목격자가 많을 텐데..
버스 운전기사님을 찾아야 합니다. 분명 기억할 겁니다. 저 빼고 제보자 모두가 탑승객 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탔고, 어디에서 내렸는지 알아야 합니다.
3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온 몸에 전율이 돕니다. 정말.. 정말.. 못 찾을줄 몰랐습니다. 금방 찾을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능력이 이렇게 형편없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그때 제보 전화를 했다면 아이들을 찾았을까요?
이제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 네티즌들이 한번 잡아봤으면 합니다. 제 미약한 진실이 범인을 잡는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방송국 관계자분들이 보시면 꼭 좀 영상을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가족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부검결과도 실종후 바로 사망한것 같다고 하던데
1. 당시 정부가 개입했을수도 있다는건데..
대대적인 정치쇼의 희생양이었다면 가능한 일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시선을 돌리기위한 그 무언가를 감추기위한 명분이 필요했을수도..
2. 대구에서 다른지역에 데리고와 죽이고 너무 알려지니 시체를 방치후
백골이된 상태에서 다시 대구로 내려와 백골을 묻었다.
수사의 시선을 특정지역으로 좁혀버리고 전국으로 확산될 수사력을 차단하기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판이 아무리 썩고 문드러졌기로 이런 쓸데없는 음모를 꾸밀 정치인은 30년전에도 지금도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꾸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 재벌가나 정치인을 엽기적인 범죄나 저지르고 음모나 꾸미는 변태집단을 만들어놔서 그렇지
그때의 시민의식은 언론이나 여론을 너무 믿었으니까요
대대적으로 뉴스를하는구나 정부도 노력을하는구나 하면서
지금 같이 cctv가 전국에 깔리고 차 마다 블랙박스가 존재하던 세상이 아니었으니까요
설령 지금같은 세상이라도 조작쯤이야 얼마든지 할수있습니다.
그 당시 묵인한 경찰과 묵인한 언론사 묵인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당신과 네사람의 증거가 묵인된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겁니다.
설령 앵벌이로 데리고가서 쓰기위해서 5명을 그것도 대구에서 경기도까지?
그러다 너무 관심이 집중되어서 죽였따고 칩시다.
그 먼 대구까지가서 5명을 데리고 올 이유가 있었을까요?
단순이 어린 아이가 필요해서 5명이라는 애들을 데리고?
정치개입없이 그런다는게 더이상하지 않아요?
본인이 직접 보셨다면서요 앞뒤가 더 이상하지 않아요?
더 가까운 충청도도 아니고 외지인 강원도도아니고
경상도도아니고 대구인데? 눈에 잘 띄는 5명을?
님이 직접본 그 애들 5명이 진짜 개구리소년 5명이 동일인이라면
저는 개입없이는 절대 일어날수 없는 일일 확률이 높다고 보는데요.
개개인의 시선에서 생각을하고 수사를 했기때문에 미제로 남은겁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서 보지않고 한정된 공간에서 수사를 진행했겠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가지면 무섭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객관적으로 그 신을 믿는사람에게는 제가 하는말이 망상이고 현혹되지말아야 할 말이되겠죠?
나는 서울 용산역 전철에서 그 아이들을 봤습니다 직장회식을 마치고 종로2가 종각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탔지요 늦은시각 막차라서 구로역이 종점인 지하철인데 내가 탄 칸에 사람이 별로없어서 긴의자에 두어명만 앉아있을 정도였습니다 용산역에서 전철문이 열리자 아이들 대여섯명이 안으로 우르르 뛰어들어와 탔는데 조용하니 눈을감고 있던중 갑작스레 떠드는 아이들 소리에 눈을뜨고 보게되었지요
당시 상황입니다 옷차림은 보통의 귀한집 아이들처럼 차림새가 좋았는데 오랫동안 길바닥에서 잤는지 옷에 먼지로 꿰재재했다 눈꼬리가 올라간 키큰아이는 빈자리가 많은데도 앉지않고 서있다가 경로석에 앉았던거같고 귀엽게 잘생긴 또다른 큰아이는 경로석 맞은편에 다른 아이랑 같이 앉았고 바로 내 맞은편 좌석에는 제일 어려보이는 아이하고 또다른 아이가 앉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곧 제일 어려보이는 아이가 눈매있는 키큰아이에게 뛰어가 뭐라고 종알거렸고 큰아이가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고 잘생기고 착해보이는 큰아이가 떠들지말고 가만히 앉아있으라 눈치를 주니 작은아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앉아서 두발을 앞뒤로 까불까불 하고있었다 아이들 표정은 밝지않았으나 자유스런 모습이었고 아이들을 통제하는듯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눈매있는 큰아이와 잘생긴 큰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아이들을 통제한다기보다는 형으로서 단속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상입니다
나름 귀해보이는 아이들 여럿이 나이도 서로달라보이는데 가출해서 함께 돌아다니는 유별난 모습이라서 지금도 그광경을 기억하고있지요 눈매가 있어보이는 키큰아이랑 잘생긴 큰아이가 일행의 형또래로 보였고 특색없는 다른 두아이 얼굴은 기억나진않지만 전철에서 이리저리 자리옮겨가면서 형들에게 말을걸던 제일 작은아이의 천진스런 행동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나는 아이들이 올라탄 다음역 노량진역에서 내렸기에 그 아이들에 대한 목격담은 이것이 전부랍니다 구로행 막차를 탔던 그아이들이 무슨연유로 오랜세월지나서 집부근 야산에서 백골로 발견되었는지 알수는없지만 안타깝기 짝이없는 일입니다 참고로 당시 제 직업은 공무원이었습니다
아직도 뚜렷한 기억이 많은데 진실이라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
왜 님이 사실증명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전혀 그럴필요없으십니다 실제로 봤으니 봤다고 하는것일뿐이고, 믿고 안믿고는 각자의 자유입니다 님이 목격한 아이들 가출차림행색이나 다음날 Tv에서 실종아이들 찾는 생방송을 했다는 것도 나랑 일치해서 내 목격담이 도움될까하는 마음으로 댓글로 덧붙여봤습니다만
목격한 사실을 글로 밝힌것으로만 만족하시고 진실이다 아니다 어쩌고 하는 반응은 각자의 또다른 생각이다 여기고 그냥두시면 됩니다 눈으로만 보고 지나친 상황이라 입증할수도 없는것이고 사실인지 입증해보라는 말도 우스운 겁니다
다만 이름석자도 모르는 사람들 목격담이 비슷하게 연결이 된다면 그아이들 경로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되는것으로만 만족하면 되지않겠어요?
너무 신경쓰지마시고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증언이 100% 사실이라고 해도..
그 목격에서 본 이들이 100% 개구리소년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거기에 손모가지 걸라고 하면 저만 나쁜놈 될테지요.
당신의 증언에서 가장 문제가 이겁니다.
그 증언의 신빙성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본게 개구리소년이다..라고 100% 확언을 못한다는겁니다.
쓸데없이 보배에서 이러지마시고..
그냥 그것이 알고싶다에 제보하시고
거기다하소연하세요
범인 잡히는데에 큰 공로가 되었음하는 글입니다
쓰니님같이 관심가져주시는분들이 잊지않고 계속 두드리시면 언젠가 꼭 밝혀질꺼라 믿습니다~~
그런데... 진짜.. 아이들이 와룡산을 못벚어나고 죽어간듯 해요..
이제 이런 수고는 안해도 될듯 합니다.
1. 그때당시에는 앵벌이소년들이 5명이 아니라 지하철만 타면 앵벌이 하는 애들이 늘 보일정도로 많았음.
2. 애들이 5명인데 그렇게 집나와서 누구의 말을 5명 전부 따를일 없다고봄.
3. 암매장을 구지 서울로 갔다가 다시 집앞에 하기엔 말도안됨.
글쓴이분이 다른 애들과 착각하여 혼돈하실수있음
이형호군 납치범도 쉽게 잡을수 있을거같고
개구리소년 범인은 2명 혹은 3명임
개구리 소년범인은 1973~1977년생중 그부근 학교 생활기록부나 학교를 다니지않는 문제있는 애들 경찰기록을 보고 늘 그마을에 문제 있거나 이슈되는 인물중에 한두명이 범인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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