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학창시절 실제 경험했던 일화로 <실제 90퍼센트+픽션 10퍼센트>로 구성했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서 몇 번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커다란 위기를 꼽자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사건은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놀거리가 다양하지만 그 시절엔 우리 같은 학생들이 놀거리가 많지 않았다. 내가 살던 부안은 명절에 보는 영화도 다른 지역(김제)으로 가서 봐야 할 만큼 고즈넉하고 자연 친화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용돈이 생기면 방과 후나 일요일에 터미널 오락실을 가거나 읍내 중심가에 있는 롤러스케이트장을 갔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도 동네 친구들이나 동생과 함께 읍내에 있는 롤러스케이트장을 가곤 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두 살 터울인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서 읍내에 있는 롤러스케이트장을 갔다. 거대한 아치 형태의 롤러장 안에는 학생들이 꽉 차 있었고 London Boys의 할렘디자이어 같은 팝송들이 거대한 실내 공간을 감싸며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나와 동생도 설렘과 흥겨움을 만끽하며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다음 신나는 음악에 맞춰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형, 저기... 저기 좀 봐~"
"왜?"
"저기 있는 애, 내 친구 같은데..... 무슨 일 있나 봐."
동생이 가리킨 곳을 보니 롤러스케이트장 구석 으슥한 곳에 동생 또래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자 두 명이 보였다. 한 명은 맞은편 아이를 향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주 선 다른 한 명은 잔뜩 주눅이 든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니 친구 확실 해?"
"응, 우리 반 친구야."
나는 동생과 함께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방*아."
"어~인*야."
"뭐 해, 여기서...."
"아니, 그냥~~"
동생 친구는 우리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살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 친구 한 손에는 검정 반지갑이 열린채 들려 있었다. 지갑 안에는 천 원짜리 지폐가 몇 장 보였고 다른 아이의 손에도 천 원짜리 지폐 두장이 들려 있었다.
"너, 지금 얘한테 삥 뜯고 있었냐?"
"아닌데요.. 그냥 빌려달라고 한 건데요."
"아니긴 뭐가 아냐 인마. 딱 봐도 힘없는 애 삥 뜯고 있었고만. 인마 못된 짓 하지 말고 가라."
그 아이는 나를 한번 째려 보았다. 하지만 힘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동생 친구에게 던지듯이 천 원짜리를 돌려주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고마워. 고마워요. 형."
동생 친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떴다. 동생과 나는 다시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음악이 멈추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데 롤러장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곳엔 십여 명쯤 되는 무리들이 보였다. 그들은 황급히 누군가를 찾는 듯 롤러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무리 중 한 명이 우리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 구석에서 동생 친구에게 돈을 갈취하던 녀석이었다. 그들은 나와 동생이 앉아 있는 쪽으로 달려오더니 삽시간에 나와 동생 주위를 에워쌌다. 나와 동생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그 무리들을 쳐다봤다.
아는 얼굴도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다. 후배도 두 명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일진)이었다. 무리 중 짱으로 보이는 놈은 키도 크고 인상도 험악했다. 덩치가 우람한 놈이 앞으로 나오더니...
"야, 이 새끼냐. 아까 너한테 뭐라고 한게..."
"맞아요~ 저 형, 아니 저새끼에요."
"야, 이 씨부럴 놈아, 니가 모담시 내 동생한테 지랄이다냐?"
그는 흰 눈자위를 드러내며 험악한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윽박질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오해가 있겠다 싶어 방금전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오해는 나의 착각이었다. 그들에게 약한 학생들에게 삥을 뜯는 건 매일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일상이었다. 나는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용돈 벌이를 막은 훼방꾼이었다.
"고개 쳐 싸들고 확~마. 상황 파악했으면 빨랑 사과 못 하겠냐?"
아까 동생 친구한테 돈을 뜯으려던 녀석이 나를 노려 보며 서 있었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찌만 속으로 이거 큰 일 났구나 싶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심장이 벌렁 거렸고 다리도 떨렸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나의 불안과 두려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힘없는 아이 돈 뺏으려고 한 게 잘한 건 아니잖아."
"하, 이 잡놈의 새끼 말하는 것 좀 보소."
"오메, 오메,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노."
"그러게, 썅, 이 좃만한 새끼가 뒤질라고 겁도 없이.'
다른 무리들도 한 마디씩 하며 나에게 겁을 주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쪽을 힐끗거렸다. 하지만 겁이 났는지 아무도 도움을 주려고 나서지는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자리를 일어나더니 황급히 다른 쪽으로 옮겼다. 그 사이 롤러스케이트장엔 다시 신나는 팝송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나와 동생이 처한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다시 손에 손을 잡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야, 안 되겠다. 이 새끼들 밖으로 끌고 가자."
"그려, 옥상으로 데불고 가자."
"끌고 가서 지난주 그 새끼처럼 좃병신 만들어 보자고."
"넌, 이제 좃 되부렀어 새꺄."
"야들아~뭣허냐, 이 새끼 언능 끌어 내지 않고 잉."
짱의 말이 끝나자 무리 중 몸짓이 가장 큰 놈 한 명이 확 튀어나오더니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내 멱살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나는 놈에게 멱살을 잡힌 채 허공에서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놈이 더 나왔다. 나를 밖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있는 힘껏 두 손으로 멱살을 잡고 있는 놈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무리 중 한 놈이 더 나오더니 내 한쪽 팔을 비틀었다. 나는 불시에 세 놈에게 붙들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들아, 시방 머더냐? 이 새끼 언능 끌고 나가잔께."
"그려, 좃밥도 아닌것이, 여가 어디라고 깝치고 지랄이랑께."
"형, 그만하면 됐으니 봐주죠."
"뭐시라, 봐주자고?"
"보니까 우리 학교 선배 같은데 불쌍하잖아요."
그때 무리중 안면이 있던 남자애가 불쑥 앞에 나서더니 한번만 봐주자고 했다.
"새꺄! 니 학교 선배면 다야. 봐주긴 뭘 봐줘."
"야, 니는 꺼져 있으라. 이 느자구 없는 새끼는 형님들이 알아서 할랑께."
나는 순간 빠르게 판단을 해야 했다. 혼자였다면 달리기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옆에 동생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나도 동생도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있어서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저 놈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나보다 덩치가 큰 놈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나를 끌어내려고 하니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삐이익.
그때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입구쪽이었다. 경찰관 두 명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경찰관 뒤에는 아까 도와주었던 동생 친구가 있었다. 그는 몹시 숨이 찬듯 몸을 구십도로 숙인채 한동안 헐떡였다. 무리들은 순식간에 흩어지더니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경찰관은 잠시 나와 동생의 상태를 살피고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특별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파출소로 돌아갔다. 나는 그제야 헝클어졌던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시 고쳐 입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에 가장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은 그렇게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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