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소풍
조금전 소풍 얘기에 눈물터졌던 달콤다방입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어머니께 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정확히 국민학교 3학년때입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우리집 지금 생각해 보면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시 버스운전을 하셨는데, 본의아니게 인사사고를 내셨습니다.
버스 문에 가방끈이 걸려 있었는데…
승객이 가방을 뺄려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땅에 부딪혔고 결국 그 승객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아버지가 몇 달간 좋은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입이 끊기다 보니 생활고는 말할 것도 없었죠.
설상가상으로…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고,
철이 없었던 저는 신나는 마음에 빨리 김밥도 싸고, 사이다도 사고, 먹거리 챙길 즐거움에 어머니에게 빨리 먹을 것을 사러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께서는 이런 상황에 소풍까지 겹쳐 속이 속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그 당시 집에 쌀 살 돈도 없는 현실이다보니 김밥은 사치였습니다.
때마침 근처에 가까운 친척집이 있었고, 제법 잘 살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김밥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돈을 빌리러 가셨지만 무슨 상황에서인지 돈은 빌리지 못했습니다.
누가 반대를 했었는지 알지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날이 저물고 있었고, 깁밥을 밤에 싸시나 보다 하고 골목길에 나갔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잠시 놀더니 집에 소풍준비 한다고 하나둘 들어가고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깟 김밥 밤에 싸면 더 좋지”…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 집에 오니 어머니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하십니다.
“3학년 때는 소풍을 가지 말고, 4학년때 가자…”
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나도 소풍가고 싶어. 왜 김밥을 안싸는건데.!!”하며 따지듯 물었고
어머니는 오늘 가게에 김밥재료 다 팔려서, 김밥을 살 수 없으니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럼 가게에 가서 다 팔렸는지 확인 해 보자”고 말대답을 했고, 어머니는 그만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리셨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김밥재료를 사러 가자고 하십니다.
아무튼 김밥재료도 사고, 사이다도 사고, 오징어땅콩도 하나 사고…. 신났습니다.
많이 늦은 시간에 그렇게 어머니는 김밥을 싸 주셨고, 다행히 저는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상황을 아시고 돈을 조금 주셨답니다. ㅜㅜ
제가 큰 후에 어머니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당시 돈 빌리러 가신 어머니 심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무너집니다.
이후로도 소풍 이야기만 나오면 철없었던 나의 행동들과 눈물흘리던 어머니 생각에 울컥해지곤 합니다.
비내리는 오늘은 퇴근길에 부모님께 전화드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땐그랬지
마지막 다른집 파출부 또 가시고, 하루에 넷탕을 뛰시던 어머니에게 그당시 딸기우유가 너무 먹고 싶어서, 달라고 하면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하루는 심하게 떼를쓰니 먹고싶은 만큼 먹어라 하셔서 4개를 연속으로 먹고 설사를 한 기억이 떠오르내요..지금도 딸기 우유를 젤루 좋아함..
마실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좀 슬프긴 합니다.
그땐 급식이 있길했나 3남매 도시락 싸는걸 몇년을 하셨는지...
그늘없이 키우느라 우린 진짜 천진난만했음.
진짜 철없이 반찬 투정도 많이하고,
중학교때 가출에 고등학교때 자퇴할거라 교복 버리고... 햐...
내가 생각해도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물론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3남매 시집, 장가 다가고 엇나간적 없이 다들 야무지게 살고있음.
어머니 우리 키우며 겪었을 서러움이 한두번이였을까...
군입대하고 신교대 수료때 면회 오셨을때 어머니 얼굴이 왜이리 늙어보였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가에 이슬이...
우리 엄마 아직도 예쁘고... 어디 특별히 아픈데 없이, 다 늙으셨어도 주름펴는 성형에 멋쟁이 할머니로 지내시는거 보면...
먼저가신 아버지와 세월이 참으로 야속함.
몇년후면 내 나이가 50인데...
아직도 엄마, 엄마 거리는 장남임.
손자, 손녀 재롱에 깔깔 넘어가시고, 울고 웃고... 사랑합니다라고 게시판 댓글에 대신 써봄
마지막 다른집 파출부 또 가시고, 하루에 넷탕을 뛰시던 어머니에게 그당시 딸기우유가 너무 먹고 싶어서, 달라고 하면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하루는 심하게 떼를쓰니 먹고싶은 만큼 먹어라 하셔서 4개를 연속으로 먹고 설사를 한 기억이 떠오르내요..지금도 딸기 우유를 젤루 좋아함..
마실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좀 슬프긴 합니다.
그때는 국민핵교 였을때
6학년 수학여행도못가고
소풍도 몇번 못갔던 기억이 나네요
3살터울 동생하고 소풍대신
뒷동산에 올라서 나무타고
놀았던 기억이 새릅네요
그땐 급식이 있길했나 3남매 도시락 싸는걸 몇년을 하셨는지...
그늘없이 키우느라 우린 진짜 천진난만했음.
진짜 철없이 반찬 투정도 많이하고,
중학교때 가출에 고등학교때 자퇴할거라 교복 버리고... 햐...
내가 생각해도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물론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3남매 시집, 장가 다가고 엇나간적 없이 다들 야무지게 살고있음.
어머니 우리 키우며 겪었을 서러움이 한두번이였을까...
군입대하고 신교대 수료때 면회 오셨을때 어머니 얼굴이 왜이리 늙어보였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가에 이슬이...
우리 엄마 아직도 예쁘고... 어디 특별히 아픈데 없이, 다 늙으셨어도 주름펴는 성형에 멋쟁이 할머니로 지내시는거 보면...
먼저가신 아버지와 세월이 참으로 야속함.
몇년후면 내 나이가 50인데...
아직도 엄마, 엄마 거리는 장남임.
손자, 손녀 재롱에 깔깔 넘어가시고, 울고 웃고... 사랑합니다라고 게시판 댓글에 대신 써봄
어릴때 소풍날은 정말 특별했던거 같아요.
생각해보면 김밥천국 나오기 전엔
김밥이란게 흔히 먹을수 있는 음식은 아녔던거 같은..
어릴땐 참 철없고 몰랐던.. 당시 어머니 맘에 어땠을지..ㅠ
사연들이 있죠
지금 애 키우는 입장에서는
애는 애처럼 크는게 좋은거 같아요
업종이 다르지만 제 최애 음식이 김밥입니다.
우리엄마 김밥 정말 먹고싶습니다.
하지만 먹을 수가 없네요 ㅜ
그걸 모르고 자랏다.
소풍을 가는데도 김밥 한 줄 안 싸주고
천원짜리 한장주고 다녀오라고 햇엇는데.
그중에 나도 포함됐지만...
그당시 김밥은 정말 귀한음식 느낌이었지
김밥체인점이 생기면서
김밥이 흔한 음식으로 느껴짐
소풍 내년에 가자 하셨을때
얼마나 힘드셨을지ㅜㅜ
소풍 잘 갔었는데
뭐 김밥이좀 부럽긴 했지만
오래전 추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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