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먼저 이런 패륜망덕하고 하늘이 무너저 심장을 때리는 슬프고도 아픈 사연을 천만번 생각하고 고민 해봐도 답을 찾을수 없어 사연을 올립니다~
만남
저는 52세 한가정의 가장이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대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와이프를 만나 10년 조금넘게 결혼생활을 하던중 3년만에 귀하디 귀한 아들을 나았습니다
낮선남자와의 만남
결혼초기에는 집으로 많은앙의 편지와함께 선물들이 날아왔었고 어디서 이렇게 많은편지들이 오냐며 물어보면 옛 제자들이 감사의 편지와 선물들을 보낸것이라며 전해들었고 그저 그런줄만 알고 살았습니다
평소 자유분방하고 자기관리에 최우선이였으며 여행다니는걸 너무나 조아했고 한달에 한두번은 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가지못하면 병이날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후에도 결혼전과 같이 그녀의 여행은 계속 되었고 그런모습들이 조금씩 불만으로 싸여갈무렵 기적과도같이 너무나도 귀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전 아이의 탄생과 함께 와이프에 대한 불만도 모두사라지고 이제부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모든 희생과 노력을 감내하며 아내에대한 마음도 불만에서 배려의 마음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마친후 집으로 돌아온지 몇일이 지난무렵 저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낮시간에 잠시 집에두고온 물건이 있어 들렸는데 낮선남자가 와있었고 깜짝놀라 누구냐고 물어보니 옛제자라고 소개를 하더군요..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왔습니다 몇일후 다시한번 방문했던 나의 집에서는 또한번 그남자와의 두번째 만남을 하였고 그모습이 너무나도 놀랄 광경이 었습니다 와이프는 그남자랑 함께있는 와주에 젖가슴을 다 드러낸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모습을 목격하였고 깜짝놀란 나머지 머하는짓이냐며 와를 내었고 세상에서 아이젖물리는 모습이 아름답운 모습이라며 오히려 저에게 생가이 이상하다고 타박을 하는것이었습니다 제자앞에서 다툼을 하는것도 보기좋지않아 퇴근후 애기를 하자며 집을나왔고 그날 퇴근이후 약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엿제자중 임용을 준비하는 제자가 있어 도움을 청해 자기가 도움을 주는데 아이때문에 밖에 나가질 못하니 집으로 잠시 불렀다고 하더군요..평소 분쟁거리를 만들지않으려는 저의 성격상 또 와이프의 직업상 있을수도 있는 일이다 생각하고 더이상은 문제를 만들지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일후 먼가 이상한 느낌이 있어 그땐 의도적으로 집을 방문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기가막힌 광경을 또한번 두눈으로 목격하였습니다 집에는 와이프와 아이는 없었고 걸어서 5분거리에 살고 있는 처가에 장모께서 그 낮선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나의 머리는 복잡해졌고 그때부턴 조금씩 불길한 예감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다시한번 장모에게서 와이프의 옇제자라며 소개를 받았고 여전부터 아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조금씩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 했었고 더이상 집에 오지못하게 하는것이 좋겠다며 그날밤 와이프와 애기를 하였고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나고 제가 타던 차가 bmw차량이었고 와이프가 타던차가 족만 소형차였습니다 아이때문에 바꿔타기를 원해서 그렇게 하였고 한달이나 되었을까 제가 바꿔타던 경차를 중고자동차상사에 팔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며 결국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가해 차를 돌려주었고 저는 회사에 있는 배달용 화물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하였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한동안 보이지않던 그차가 저희 아파트 주차장에서 목격이 되었고 뒷자리엔 아이의 장남감이 놓여있었고 전 또한번 불길한 생각으로 집에 올라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낮선 남자가 다시힐번 내집에 와있었고 저는 도저히 참을우가 없어서 당장나가라! 화를 내었고 와이프에게 따지기 시작 하였습니다...결국엔 그차도 그낮선남자에게 팔았다고 들러대더군요..ㅜ
불륜
더이상 낮선남자의 모습을 보지못했으며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와이프는 한달이 멀다하고 아이와함께 여행을 다녔고 이후 코로나의 등장장으로 저의 사업체또한 피해가 심각해 힘들게 힘들게 사업을 이어나가던중 아이가 5살 되던해 기억속에 잊혀져갔던 그 낮선남자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서 듣게되는 기가막히고 참담한 말을 듣게되었습니다..ㅜ
(아들과 나눈대화)
아들:아빠 엄마랑 비밀 애기가 있는데 아빠한데 말해야 할것같아~
아빠:무슨 비밀?
아들:아빠 상하를 알아?
아빠:상하! 상하가 누구야? 만화주인공이야? 아님 장남감이름이야?
아들:아니 엄마친구 상하삼촌 몰라?
아빠:상하삼촌? 근데왜? 상하삼촌이 왜?
아들:엄마랑 여행을갔는데 상하삼촌이랑 같이갔어 그래서 아빠한데 말해야할것같아...
저는 하늘이 무너지고 또한번 땅이 솟구쳐올라 저의 가슴을 때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아이에게 조금더 자세히 문ㅅ어 보았습니다.
아빠:아들아 그럼 상하삼촌이랑 몇번여행을갔어?
아들:몇번인줄은 모르겠는데 여행갈때마다 상하랑같이 갔는데..
아빠:그럼 상하말고 다른 이모들이나 삼촌들도 있었어?
아들:아니 엄마,상하,나 이렇게 셋이서 다녔는데..
아빠:그럼 여행갔을때 방은 몆개였고 누구랑 같이 잤어?
아들:방은 한개고 엄마랑 상한상 셋이서 같이 잤는데..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렸고 잠시 주저앉아 고민을 하며 아들을 않아 주었습니다 평소 엄마에게 철저한 가스라이팅을 당해오던 아이였으며 세상 엄마밖에 모르던 아이가 아빠한데 비밀 애기를 했을땐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났을까 하는생각에 더 혼란스럽지 않도록 미않하다는 말과함께 아이를 않아주고 어찌할까 답을 찾지못하는 고민의 시간이 꾀긴시간 지나고 그동안 아내에대한 불신과 그동안의 결혼생활을 도리켜보며 아주긴 고민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럴수록 아내에대한 불신많이 가득했으나 사랑하는 아들을위해 조금만 참자 조금만 희생하자는 생각으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혼
아들이 유치원을 지나 초등하교 입학무렵 아내의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 했습니다 작은 다툼에도 이혼을 요구하였고 수시로 아들과 아빠의 둘만의 시간을 가지지못하도록 감시하며 아이를 컨트롤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또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셋이 같이 있는 시간때는 아빠랑 친하게 지내는걸 두려워 하였고 물론 어쩌다 들만의 시간이 있을땐 물고빨고 여는 또래의 아이와 아빠의 모습이었으나 엄마만 있으면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였고
계속도는 이혼요국 갈수록 심해지며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아울러 그이전이나 그무렵이나 가까운 거리에 살고있던 처가에 장모께선 저만보면 내아들을 일부 돌봐주고 있으니 한달에 200여 만원씩 달라고 금전을 요구하였고 코로나 여파로 갈수록 힘들어지는 사업체도 힘에겨웠고 여러가지로 힘든상황에도 그들만의 여행은 계속 되었으며 이혼요구또한 더욱더 강력해졌습니다
지칠때로 지친 저는 협의 이혼을 하게되었고 친권,양육권 목숨보다 바꿀수 없다는말에 사람살린다는 마음으로 양보해주었고 당분간 내집에 내차에 그대로 유지해줄것을 원하여 세상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재가 집을나와 공장에서 노숙 생활을 하였으며 그이후에도 아내는 학교출근을 핑개로 아이를 장모에게 맞겼으며 그때마다 장모는 저에게 금전을 요구하였고 그때문에 다툼이 생겨 차라리 내가 하겠다하고 새벽잠 설처가며 매일아침 집에들려 아이를 캐어했고 그러기를 2녀년
지난3월초 갑자기 부산으로 학교를 옴긴다고 통보를 하였고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이사가서 살겠다고 이제 집으로 들어와 편히 살아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마치 내품속에 아들이 있는것처럼 언제나 달려갈수 있는 곳에 있다는 안심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으나 갑자기. 부산으로 간다니 너무 혼란스러웠고 걱정이 되어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통보를하고 5일만에 보따리를 싸서 간다하니 ㅜ
찾아가 몇가지 아빠로써 꼭 알아야 할. 그리고 아이를 위해 몇가지 요청과 함께 부탁을 하였으나 모두 들어줄수 없다 거절당했고 양육권,친귄 모두 양보했던저는 어찌할 도리 없이 부산 가기 하루전 아들고 시간을 보내며 얼만나 눈물을 흘렸을까 모를정도로 통곡을 하며 옷가지며 학용품이며 낮선학교 생활 아빠없이 기죽을까 걱정하며 당부하며 떠나는 아들을 눈물로 배웅을 하였습니다..ㅜ
좌절과분노
눈물로 몇일을 보냈을까 지난 과거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며 이해도 상식도 벗어났던 지난 아내의 모습에 그동안 천벌받을까 두려워 미루고미뤘던 친자확인 검사를 의뢰하였습니다 일치한다면 벼락을 맞아 죽어도 조으니 제발 내아들이 맞기를 간절히 간곡히 세상모든 신들에에 빌며 결과를 기다리다 또한번 가슴을 때리는 현실! 불일치!
저는그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미친놈처럼 어찌할까 어찌하면 조을까 죄절과 분노의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멏가지 조사를 해보니 모두가 거짓이었고 모든것이 기망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하 아이때문에 또 더 조은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히기 아이만 생각해서 간다는 부산행 에는 이미 그낮선 제자였던 남자와 함께였고 아이또한 벌써 전입을 시켜놓은 상태였으며 살람을 차린 부산의 집은 장모의 고모가 살던 집이였으며 처가 식구들 또한 한통석으로 저를 기망하고 동조를 한것이었습니다..
그낮선 남자는 몇년전 개명까지 한 상태였며 하물며 부산 으로 내려가기 하루전날은 장모라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 마지막으로 또한번 금전요구를 하더군요 제아들을 9년이나 돌봐줬으니 한달에 200만원씩 계산해서 9년치를 달라더군요..너무 화가난 저는 법원에가서 고소하시라 전하며 언성을 높헜습니다..
저희 시골 본가에는 아주 특별한 아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힘들고 가난하게 성장하시어 고생고생끝에 남부럽지 않을 많큼 사시다 두분 못배움이 하으로 남아 자식3남매 중 형님 누님 두분다 서울로 유학보내 공부시켜 뒷바라지 하였으나 손주하나 보지못 하시다 막내아들 늦은 장가에 우여곡절끝에 겨우하나 얻은 귀하디 귀한 손주였으며 그동안도 일년에 하두번이나 봤을까 10살 다되도록 하루밤재워 보내지도 못하였던 그래도 손주라고
늙은 할비할미 직접해줄께 없다고 어린 손주손에 손주엄마손에 쌈지돈뭉치 쥐어주시며 건강하게 우리손주 잘커라 잘키워주라 당부하며 눈물을 머금으시던 부모님 지금도 언제한번 대리고 오냐며 하루가 멀다고 안부전화를 하시는데...어찌해야 할까요...어쩌면 조을까요..
지금도 비어있는 제집에 들어가서 살지를 못합니다...
한두번 시도 했는데 더이상 없을 것같았던 눈울이 밤새 마르지가 않아 도저히 집에갈수가 없습니다...




































퐁퐁녀와 결혼하여 귀하디 귀한아들이
생겼는데 난중 검사해보니
뻐국이 자식을 키웠다 이거네요
근디 므쉰 미련이 남아서 슬피우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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