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미국 서부 로드트립이
어느새 12 부가 되었네요.
별 보잘것 없는 내용들이지만, 이만큼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다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애틀에 대한 보배드림 여러분들의 추억들도 많으신 것 같네요
젊은 시절의 기억들, 함께 나누게 되니 참 좋습니다.
시애틀에서 2번째 밤을 보냅니다.
첫날밤은 잠을 길게 못 이뤘지만
둘째날은 푹 잘 잤네요,
꿈 속에서 그리운 이들도 만났답니다.
다음날 아침,
숙소가 있는 벨뷰에서 서쪽으로 다리를 지납니다.
시애틀로 넘어 왔습니다.
제가 자주 가던 호수 공원에 왔습니다.
이 호수의 이름은 GREENLAKE
이 호수 주변에서 걷고 뛰고 운동을 했었죠.
그래서 지금 현재 제가 쓰고 있는 이 메일 주소가 GREENLAKE 2 입니다.
이메일 등록할때 어떤 분이 GREENLAKE 쓰고 있다길래, (혹시 그분도 시애틀의 추억으로?)
저는 뒤에 숫자 2 를 붙였습니다.
도심속 공원 그린레이크, 평화롭고 좋은 곳입니다.
25 년만에 다시 왔습니다.
1994 년 7 월
정말 놀랬던것이 공원에 왔더니
1. 대부분의 사람들이 햇볕 아래 드러 누워 있는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햇볕 처음보나?>했습니다. 가을 지나서 겨울 되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시애틀은 다음해 봄까지 흐리고 추적추적 비나 눈이 옵니다.
시애틀의 여름은 습도가 낮기에 기후가 쾌적하고 뽀송합니다.
2. 남자들은 조깅할때 아예 웃통을 다 벗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운전할때도 위에 아무것도 안 입고 안전벨트만 하고 다니더군요
3. 여자들은 조깅할때 위에 속옷 비슷한거, 지금 생각해보면 탱크탑? 운동할때 입는거
그거만 입고 짧은 반바지에 뛰는 겁니다. 한국에서 온 24 살 순진한 총각은 얼굴이 빨개졌죠.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즈는 또 얼마나 큽니까...
4. 강물 위에 오리떼가 있고, 길위에도 야생 동물 다람쥐 돌아 다니고 참 신기하더군요
5. 모기가 하나도 없어요. 밤에 잘 잤습니다.
제가 한참 그린레이크 주변에서 뛰고 할때의 모습입니다.
부끄럽지만
올려봅니다.
1995 년 제가 2 5 살때 입니다.
뒤에 푸른 호수가 바로 지금 이 그린레이크 입니다.
아마도 6월 정도인것 같네요
미국와서 일년정도 지났고, 잘먹고 놀고 하니까 토실하군요.
사진에 이어폰으로 음악 듣고 있네요
이때 즐겨 듣던 노래가 CRYSTAL LEWIS < SHINE JESUS SHINE >
이 노래 크게 틀고, 창문 내리고, 시애틀을 신나게 달렸네요
지금은 콜벳 타면서 맑은 날에 이 노래 듣습니다.
보배드림 회원님들 눈을 불편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죄송.
25 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풋풋하던 청년은 어느새 50 살 아저씨가 되어
아들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왔군요.
세월이 화살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나를 보더니
달려 오네요
내 품안에서
새근새근 잠 들던 아이가
훌쩍 커 버렸습니다.
달리기 하면 저보다 빠릅니다.
딸과 아들을 키우다 보니
이 드넓은 우주에 내가 왔다간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가 생각납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 올라야지'
조국과 민족, 그리고 이 세상에
비록 내 자신은 큰 도움이 못 되었지만
나의 자식들은 잘 성장해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나보다 더 도움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처음에 미국 시애틀 왔을때 1994 년 7 월 여름이었습니다.
그때 받았던 컬쳐쇼크 ! 문화적 충격 !
시택 에어포트에서 홈스테DL 집으로 가는데
그 넓은 고속도로 왕복 12 차선 I-5 에 차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차들이 종류가 거의 다 다른것이 신기하더군요
전 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의,
모든 형태의 차들이 다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뒤로 이런 저런 생활속에서 놀랜것도 많습니다.
마트 갔더니 엄청난 사이즈의 주차장, 산더미처럼 쌓인 주스 우유 고기
TV에 치킨집 할인 광고 나오면, 3 달러에 10 조각이었나?
차 몰고 가서 사왔네요
영화관에도 미디움 사이즈 콜라 팝콘이 초대형이고
기름값도 당시 환율이 750 원 이었나?
아무튼 고급유 가득 주유하는데 3 만원이면 충분했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고, 다들 잘 웃고
미국은 참 좋은 세상이다 싶었네요
제가 처음에 6개월 지냈던 집입니다. 주소도 외웠습니다.
92 ND ST. GREENWOOD. SEATTLE. WA.
다시 찾아갔더니, 그대로 있군요.
저기 2 층 오른쪽이 제 방이었습니다.
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리겠습니다.
1994 년 미국 시애틀 저의 홈스테이 집입니다.
저는 24 살 이었습니다.
메리 아주머니 집인데요, 큰 딸은 시집갔고 종종 놀러왔네요.
큰 아들 앤디, 막내 아들 앤소니가 있었습니다.
앤소니가 제 또래 여서, 여기저기 저를 데려가줬습니다.
어때요 포스 있나요?
2 층 오른쪽이 제 방이었습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시애틀의 겨울에
눈도 제법 많이 옵니다.
이 집에서 1994 년 7월부터 1995 년 1월까지 있었습니다.
그뒤로는 메리 아주머니 가족이 다른 주로 이사를 가셨기에
저는 새로운 집을 구했습니다.
한가지 특이 한건
보시다시피 그때는 정문이 빨간 색이었는데요,,
25 년 세월이 흐른뒤에 가보니
대문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네요.
주소 체계도 바뀌어서
823 번호도 새로 붙였군요.
이 집에 머무를때 가을에, 그러니까 1994 년도 가을에 서울 성수대교가 무너졌어요.
참 안타까웠죠. 시애틀 타임즈에도 제법 크게 나왔어요
매리 아주머니와 함께 기도하고, 친구들도 위로 해주던 기억 납니다.
초인종 딩동! 하니까
다행히 집 주인분이 계시더라고요.
제가 25 년 전 사진 보여 드리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 제 이름은 SONG 입니다. 예전에 여기서 살았었습니다. 그때는 24 살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다짐하기를
한국에 돌아가서 꼭 성공해서 시애틀에 다시 오겠다고 결심 했었습니다. 이제 제가 50 살이 다 되어, 제 아들과
함께 다시 왔습니다. 실례지만 집 거실과 제가 지내던 방을 제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랬더니 집주인 분이
" 정말 신기한 일이군요. 대단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마음껏 둘러 보세요. 이거 뉴스에 나올 일이네요"
제가 지내던 2 층 방입니다.
이 방에서 지내던 푸릇했던 청년이.............. 다 늙어서 돌아왔네요.
그래도 우리 아들이 있기에 만족합니다.
25 년전 그때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용기 내어 올려봅니다.
저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책상위 가족 사진도 보이고
저거 자동 응답기 달린 무선전화기 한국 가져와서 잘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최신 기종이었거든요. 지금 보니 재미있네요
제 방이었으니
좀 프리한 모습도 있습니다.
제 뒤로 바깥에 흰색 스포츠카 한대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차입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요
1994 년 7 월 미국 시애틀에 도착하자 마자
일주일 뒤에 저는 유즈드 카, 중고차를 구입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집에서 슈퍼 갈려고 해도 걸어 가면 10 분
학교 갈려면 30 분
대중교통 버스는 드문드문이라
차가 꼭 있어야 하겠더군요.
그래서 지역 신문 시애틀 타임즈에 광고 보고
젊은 백인 남자에게서 문짝 네개 포드 토파즈 샀는데요,
실내가 올 레드 라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단점이 이게 좀 속도가 느린겁니다.
그래서 산지 2 주만에 다시 팔았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딸 준다고 사고 싶다고 해서 거래하고, 기념 사진 찍었어요
제 오른쪽 여자애가 이 차의 새 주인이 된건데요
뭐랄까,,, 약간 백인 냄새?? 나길래,., 슬쩍 옆으로 비킨 제 모습입니다.
뒤에 보이는 빨간색 파란색 차는 이 집 아들, 앤디 앤소니 차 입니다.
그럼 저는 포드 토파즈 팔고
뭐를 샀느냐
일단 빠른거, 폼 나는거
구입 했습니다.
이름하여 닛산 200 SX 터보 수동 모델입니다.
자자 잔
해치백 스타일
이때는 어디 시애틀 외곽에 놀러갔다가
밤새도록 놀고(뭐했지?)
기름 떨어져서 주유소에 왔는데
시골이고 새벽이라 아직 문 안열었길래 기다리는 중이었네요
운전석에서 V 하고 있네요
좀 유치 하군요. 하하
라이트 켜면
그렇습니다. 두개의 숨겨진 히든 라이트가, 지잉~ 올라옵니다.
엔진 후드에 빨간색으로 터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차타고 정말 많이 돌아 다녔습니다.
기름값 싸니까 고급유 넣고 창문 내리고 음악 크게 틀고
조수석 튜닝 필수죠.(비밀) 막 돌아 다녔습니다.
G.O.A.T.
BEST DAYS OF MY LIFE.
여러가지 에피소드 많은데요,
주차 위반도 몇번 떼고 (당시 친구 집 앞이 좀 시내여서..)
과속으로 스피드 티켓도 2 번 받았습니다.
55 마일 구간에서 75 마일 이었나?
경찰 아저씨 번쩍 번쩍 저를 세우고는
사건 기록지에 적잖아요
키가 몇피트냐? 저는 178 센티입니다. 하면,
몸무게 몇 파운드냐? 저는 70키로 인데요 하면
투덜투덜대면서 무슨 수첩에서 표 같은거 꺼내서, 옮겨 적던 기억 나네요
저는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과속 티켓 뒷면에 <의견 진술 희망>에 체크해서 우편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법원에서 저를 호출하는 통지서가 오는데요
정해진 날짜에 미니 법원에 가서, 판사 아저씨에게 호소합니다.
"미안합니다. 흑흑. 제 차가 터보라서요
속도계 잠시 안봤더니 고속도로 내리막길에 그냥 쭉 갔어요.
처음에는요 제가 새 주인이라고 길들인다고 좀 밟았어요....
다시는 과속 안할께요. 저는 학생이라서요, 이 벌금이 큰 돈입니다.
판사님 가만 보니 한국에 계시는 저의 아버지 닮으셨네요. 흑흑
저는 미국을 사랑합니다. 한미 친선관계도 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내용을, 그렇습니다. 영 어 로, 해야만 합니다.
판사 아저씨 쭉 제 얘기를 듣더니
"좋다. 반으로 깍아줄께. 앞으로 조심해라.
한국 아버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해라"
그래서 150 불 티켓을, 70 불로 냈습니다.
그 뒤로 물론 공부 열심히 하고, 스피드 요령껏 했죠.
참 그때만 해도 잘 나가던 차였는데요, 문득 그립네요
헤드 라이트 켜고 한 컷
HYS 2 1 7
수고 많았다. 고마웠어.
눈 내리던 독일 마을
레벤워스 길에서 고생많았다.
오리곤주 오션 쇼어에서의 추억도 좋았어~~
저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줬던 첫번째 집
그때만해도 참 크게 느껴졌었는데
지금 보니 참 소박하고 아담하군요.
잘 있거라...
이제 두번째 집에 가봤습니다.
첫번째 집에서 약간 동쪽으로 10 분정도 거리입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이 집입니다.
이곳은 룸메이트 RON 과 같이 지냈어요.
당시 제가 25 살, 론은 29 살이었네요.
25 년 전의 모습이랑 비슷합니다.
역시 대문 색깔은 바뀐 듯 하네요.
차는 SUV 가 주차되어 있군요.
혹시 RON 이 아직도 살고 있으려나?????
똑같은 장소
25 년 전 모습입니다.
자자잔
RON의 트럭 위에 제가 앉아 있네요.
론은 저 트럭이랑,
기다란 아줌마 차 웨건 스타일도 하나 있었죠
저 계단 저 집..그대로 입니다.
론은 없더군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요,
역시나 저의 스토리를 듣더니
아주 환영 해 주었습니다.
부동산 컨설팅 하시는 잭 선생님이시네요.
거실에서 한 컷
1995 년 제 나이 25 살
이 집 거실에
드러누워있는 제 모습입니다.
왼손에 들고 있는것은 카메라 리모콘 입니다.
탁 누르면, 찰칵 찍힙니다. (필름 넣고 인화하는 방식)
자세가 상당히 건방지네요..죄송.
제가 지냈던 방입니다.
하하하
25 년 전
25 살 파릇한 청년의 흔적과 기억속에
이제 우리 아들과 함께 서 있습니다.
추억속 젊은 청년은
그저
해맑은 모습이네요
이 집에 있을때, 1995 년도 봄에 서울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어요.
CNN 에도 계속 나오고 했어요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RON 도 위로 해주더군요.
당시 룸메이트 였던 RON 입니다.
론은 큰방을 쓰고 700 달러 내고, 저는 옆에 작은방 쓰고 500 달러 냈습니다.
뒷 마당에서 한컷
론은 조부가 아일랜드에서 넘어 오신분이라
아이리쉬 어메리칸 자부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론과 함께 오로라 애비뉴(1 번 하이웨이 국도) 타고
북쪽 한인 타운에 세시봉 노래방 갔을때 추억이 있습니다.
론은 U2 -
그래서 저는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부르면서,
"이 노래도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 거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
론 미안 ~~
론과 함께 야구장에도 갔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 VS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당연 시애틀 승리했죠~
론과 함께 열렬히 응원했거든요~
" KICK THE ASS~!!"
학교 갈때 제 모습입니다.
갔다 왔을때인가? 모르겠네요.
아무튼 멋지게 수동기어 파파박 후진 딱~~ 해서
저 길로 (쭉 내리막) 터보 파워~!!! 풀 악셀 합니다.
저 곳에는 폴리스 오피서 없거든요~
제가 살았던 집 2 곳을 방문하고
이번에는 제가 다녔던 학교에 갔습니다
NSCC 입니다
NORTH SEATTLE COMMUNITY COLLEGE 입니다.
저는 1994 년 7 월에 미국 시애틀 NSCC 어학원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I - 20 학생비자 3 년 받아서 갔는데요
3 개월만에 어학스쿨 과정 끝내고 곧바로 NSCC 국제 정치학과 미디어학 수강했고 학점 받았습니다.
학적이 없으면 불법 체류라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미국 체류 기간 내내 학적을 유지했습니다.
1995 년 7 월까지 다니고, 그 해 가을에 모교 성대에 3학년 2학기 복학 했습니다.
25 년 전 그때는 학교가 아주 커 보였는데요,
지금도 크군요..
여기 이 교정을
25 살 청년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지금은 방학이라 조용하군요.
시간이 흘러
제가 서 있던 자리에
우리 아들이 서 있습니다.
제가
정말 정말 자주 가던
학교 도서관입니다 .(진짜임을 강조)
이날은 휴관이라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저기 안에 보면 스파이더맨 매달린 모습이 있습니다.
"아들아
아버지 공부하던 곳이다.
미국과 미국 사람은 배울점이 많다.
왜 노벨상을 많이 받는지, 왜 세계 최강국이 되었는지 생각 해 보거라.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너의 아들(나의 손자)과 다시 미국을 방문하길 바란다.
그때 내가 해준 얘기를, 너의 아들에게 해 주거라."
"THE FUTURE DEPENDS ON WHAT I DO IN THE PRESENT"
아들이 저에게 말해주네요
"아버지,
시애틀이 아버지를 자라게 해줬네요!
완전 두번째 고향이네요!
저도 다음에 제 아들과 꼭 시애틀 다시 올래요!!"
그래라.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너의 아들과 내 얘기를 해준다면
정말 고맙겠구나
이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네요
미국 시애틀 자동차 동호회 가보기로 했거든요
제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여기 동호회 회장인 MR. JUSTIN과 미리 연락했거든요.
이러 저러해서 아들과 꼭 참석하고 싶다 했더니
두 팔 벌려 환영한다네요.
미국 시애틀 자동차 동호회 기대됩니다.
25 년 전에 200 SX 스포츠카 주차 하던, 저의 학교입니다.
이제 300 S 가 저와 아들을 기다리고 있군요.
저 하늘은 기억하고 있겠죠
25 년 전 그 때의 한국 청년이 얼마나 멋졌었는지를........(죄송)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보잘것 없고 부족하지만
잘 이해해주세요.
마음으로 공감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멋진 아버지가 되셨네요!
다 우리 아들 덕분입니다.
제가 1994 년 7월에 시애틀 갔습니다.
혹시 7월까지 계셨으면? 신기하네요.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25년전 집들도 다 그대로 있고, 메리아주머니와 론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들에게도 너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듯합니다.
멋진 글 잘읽었습니다.
메리 아주머니와 론을 만난다면
괜시리 눈물이 날것 같네요.
나컴이야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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