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남깁니다.
욕을 해도 좋은데... 위 논조는 좀 많이 거부감이 드네요.
일본이 한국인을 죽였는데... 뭐 어째요? ㅎㅎㅎ
2015년 라디오에서 나온 내용인듯 하니 좀 더 찾아보면 되겠지만 구찮...;
애써 외면 할까봐 일부분 발췌.
◆ 전우용: 영향이 크게 미쳤죠. 그 사건 이후에 고종은 거의 밤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리고 여기 들어와 있는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부탁해서, 미국인들까지 죽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이 권총을 들고 고종의 숙소를 돌면서 직접 경비를 섰다는 회고가 많이 남아있죠. 무엇보다도 이 사건 이후에 일본이 국적(國敵)이란 인식이 굉장히 높아졌죠. 을미사변 직후부터 전국적으로 반일의병운동이 일어났고요. 고종도 당시 일본군이 점령했던 경복궁에서 탈출해서 아관파천이라고, 외국 공사관에 들어가서 정국을 반전시킨 거죠. 그래서 일본에 협력했던 혐의가 있던 대신들을 전부 역적으로 몰아서 처단하고, 외교정책을 가급적이면 중립화로 가는 외교정책이 바뀌고, 국내적으로도 조선이 야만국취급을 받기 때문에 이런 모진 일을 당했다고 해서, 문명근대화를 끌어들이기 위한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정치적인 파장은 굉장히 컸고요. 민간에서도 잘 아시다시피 백범 선생이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고 일본인을 테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찻아 죽일려고한 사람도 민비임... 참 역사의 아이러니..
대원군이 국고를 비축? ㅎㅎ 경복궁재건으로 돈찍어내서 인플레 발생
미국 프랑스와 결사항전으로 나가다가 처맞고 병사만 죽었는데 우리가 이겻다며 전국에 척화비 세우고
정신승리
보다못한 며느리 명성황후가 대원군내쫒고 개혁시작한것임
기독교 천주교등 제사도 안지내는 종교를 개방시켯으니 명성황후는 당시 공공의 적이 된것임
그래서 악녀로 까이게 된거
지금도 제사가지고 싸우는데 당시엔 그냥 국민 99프로가 수구 대원군 지지하고 개화파들 역적이라고 까데던 시절
북한이 대원군 빨고 명성황후 까데지 대원군이 미국과 싸운인물이고 명성황후가 미국을 끌어들인 인물이니
선교사에 준돈은 신식 병원지으라고 준거야 세브란스병원 지은게 명성황후다
저 표범양탄자는 1900년이후에 제작된것으로 판명남 명성황후시절은 없던 물건 ㅎㅎ
벨기에급은 되던 국가야
기관총등 신식무기로 무장한 군인 3만 군함 2척보유
서울 전차개통이 도쿄보다 빨랐다
개상도놈들 안동김씨떔에 망한국가 물려받아서 근대화노력이라도 했던게 고종과 명성황후야
청나라군대는 명성황후가 부르지 않았다 임오군란때는 임오유월일기가 확실하게 증명하고
동학때는 친청파들이 부른거야 당시 위안스카이가 사실상 총독이었고
일본군상륙은 그냥 동학때문이야 근데 역사를 왜곡하지 절라도놈들이
황현 저인간도 절라도
왕건의 명언이 맞았다 절라도 개상도 남부지방놈들 정치시키지 말라고 유언을 남겻는데
고려는 상도놈 김부식땜에 망했고
조선은 절라도 동학땜에 망함
교통사고나 나서 뒈져
보수놈들이 명성황후 까는이유는 친일성향이라 그런거고
사실 좌파들이 명성황후는 가장 심하게 깐다
북한도 미틴뇬이라 까데고
유시민도 민비라는 호칭도 아깝다며 민자영이라는 망발을 해대고 댕기지
나븐놈들
진짜 유튜브로 배운거야?
진짜 믿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걱정된다.
일본 상륙이 동학 때문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다시 좀 공부해라
당시 일본이 조선에 들어오기 위한 명분을 얼마나 찾고 있었는지는 알기나 하는가?
친청파가 부른게 아니라
당시 진주성까지 함락되었던 판국에 조선정부에서 동학농민운동을 대항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는게 정설
조선정부에서 청나라를 부른거여 ...
일본은 이때다 싶어서 텐진조약 빌미로 조선땅에 들어온거고
이것을 눈치깐 전봉준은 해산했어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1차 동학농민운동이고
2차는 이제 왜놈들이랑 싸운거지
찻아 죽일려고한 사람도 민비임... 참 역사의 아이러니..
그냥 민비!!
그냥 민자영임
명성왕후는 조선 18대 현종의 비.(숙종 어머니)
명성황후는 조선 26대 고종의 비.
민비가 그랬던게 아닙니다.
명성왕후는 조선 18대 왕 현종의 비로 숙종을 낳은 사람입니다.
내용에 있는 민비가 명성황후이고 명성황후가 조선 26대 왕 고종의 비입니다.
많은분들이 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입니다.
참고로 고종 스스로가 황제로 칭하였기에 민비가 황후가 된것이고 기존에는 왕이였기에 왕후였음
제목 수정하시길...
대원군이 제대로 잡았어도
수정했습니다 명성황후!
"(백성들이) 왜놈이 국모를 죽여 분노해야할지, 그토록 학정을 일삼은 민자영이 죽은걸 기뻐해야할지 헷갈려 했다."-황현의 매천야록
조선을 망하게 한 장본인
그렇게 악행을 자행했다고 일본인이 난도질 해도 되는 사람인지? ㅎ;
일본이 아니었음 뭐 어째요?
ㅎㅎㅎㅎㅎㅎ
식민지 근대화론에 버금가는 주장일세...
ㅋㅋㅋㅋㅋ
링크 남깁니다.
욕을 해도 좋은데... 위 논조는 좀 많이 거부감이 드네요.
일본이 한국인을 죽였는데... 뭐 어째요? ㅎㅎㅎ
2015년 라디오에서 나온 내용인듯 하니 좀 더 찾아보면 되겠지만 구찮...;
애써 외면 할까봐 일부분 발췌.
◆ 전우용: 영향이 크게 미쳤죠. 그 사건 이후에 고종은 거의 밤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리고 여기 들어와 있는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부탁해서, 미국인들까지 죽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이 권총을 들고 고종의 숙소를 돌면서 직접 경비를 섰다는 회고가 많이 남아있죠. 무엇보다도 이 사건 이후에 일본이 국적(國敵)이란 인식이 굉장히 높아졌죠. 을미사변 직후부터 전국적으로 반일의병운동이 일어났고요. 고종도 당시 일본군이 점령했던 경복궁에서 탈출해서 아관파천이라고, 외국 공사관에 들어가서 정국을 반전시킨 거죠. 그래서 일본에 협력했던 혐의가 있던 대신들을 전부 역적으로 몰아서 처단하고, 외교정책을 가급적이면 중립화로 가는 외교정책이 바뀌고, 국내적으로도 조선이 야만국취급을 받기 때문에 이런 모진 일을 당했다고 해서, 문명근대화를 끌어들이기 위한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정치적인 파장은 굉장히 컸고요. 민간에서도 잘 아시다시피 백범 선생이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고 일본인을 테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암튼 결론은 ... 세뇌가 이렇게 무섭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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